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신작 과거의 환경-진화 과정 알 수 있어 ◇불멸의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496쪽·2만5000원·을유문화사
그는 현대 생명체의 유전자를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설명한다. 팔림프세스트란 여러 차례 글씨가 적힌 양피지를 말하는데, 고대와 중세에는 양피지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이미 글이 쓰인 양피지에 글씨를 지우고 새로 덧써서 재활용했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오래된 양피지를 자외선이나 X선으로 촬영해 지워진 글씨들을 읽어내면서 과거의 흔적을 파헤친다.
이런 다층적 기록이 남은 양피지, 팔림프세스트와도 같은 유전체를 분석하면 그 종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고 적응하며 진화했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는 ‘탁란’ 행위를 하는 뻐꾸기의 비밀도 유전자로 읽을 수 있다. 암컷 뻐꾸기들은 자신이 자란 둥지의 새를 정확히 기억해 같은 종의 새 둥지에 비슷한 알을 낳는다. 이는 알의 색과 무늬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암컷의 염색체에 있기 때문이며, 뻐꾸기의 유전체를 분석하면 그 종이 대대로 어떤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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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는 유전체 해독 기술이 발전하면 화석이나 유물보다 더 정밀하게 과거를 복원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는 유전자가 개체와 종이 사라져도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불멸의 정보’임을 강조한다. 유전자 해독을 통한 ‘유전적 고고학’의 미래를 특유의 명확한 문체와 풍부한 사례, 일러스트로 제시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