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월 500만 원 생활비 쓰던 50대 중반 퇴직자, 10억 원으론 턱없이 부족
평온한 노후를 보내는 데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의견이 분분하다. GettyImages
인터넷을 찾아보니 “평온한 노후를 보내려면 모아둔 돈이 10억 원이면 된다” 등 얘기가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현 연소득의 20배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퇴직 후 20년 동안 살아갈 돈이 있으면 그사이 매년 이자수익, 투자수익 등이 생기기 때문에 실제로는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이 생긴다는 것이다. 월 생활비 500만 원에 10억 원이면 20년은 아니지만 그래도 17년은 살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돈 걱정 없는 은퇴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연 5% 투자수익, 쉬운 일 아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북돋아주는 대답을 해야 할지, 솔직히 얘기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여기에서까지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내 솔직한 대답은 이거다. “10억 원이면 어찌어찌 먹고살 수는 있다. 그런데 돈 걱정 없는 평온한 은퇴 생활? 그건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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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을 그냥 은행에 두는 게 아니라 투자하면 돈이 늘어날 테니 괜찮지 않을까.” 생활비로 20년 동안 쓸 현금이 있다고 할 때 연 5% 수익을 올리면 1년 치 생활비가 생긴다. 그럼 평생 원금을 깨지 않고 이자나 투자수익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지 않나. 계산상으론 맞다. 연 5% 수익을 올리면 돈을 써도 재산이 늘어난다. 그런데 투자로 연 5% 수익을 계속 얻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 투자를 성공적으로 해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투자 실패로 돈을 날릴 가능성이 더 크다. 무엇보다 그 정도 수익을 지속적으로 올리려면 계속 돈, 돈, 돈 해야 한다. 돈 걱정 없는 평온한 생활과는 또 멀어진다.
그 돈을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을 사서 월세를 또박또박 받으면 괜찮지 않느냐고? 10억 원짜리 부동산이면 한 달에 400만 원 이상 월세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으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고? 이건 임대업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 혹은 임대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나 아주 좋은 임차인을 만난 운 좋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상가든, 주택이든 매달 임차료를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내 경험으로는 평균 4명 중 1명은 임차료를 밀린다. 여기서 4명 중 1명이라는 건 한두 달 이상 임차료를 내지 않는 경우다. 한 달을 넘기지는 않지만 10일, 보름씩 날짜가 밀리는 일은 아주 다반사로 발생한다.
임대료가 용돈인 경우에는 임대료가 좀 밀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임대료가 생활비라면 심각해진다. 한 달 임대료가 밀리면 임대인은 한 달 동안 먹고살 돈이 없어진다. 일부 임대인에게 임대료는 월급이다. 회사에서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월 500만 원이 생활비라고 할 때 월세로 500만 원을 받도록 노후 대책을 짜서는 안 된다. 못해도 여러 임차인에게 월 700만 원 이상은 받아야 그중 월세를 밀리는 사람이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냥 횟수 적은 사자 노는 것 아니듯
아프리카에 사는 얼룩말은 하루 종일 풀을 뜯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사자는 평소 뒹굴뒹굴 놀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사냥한다. 얼룩말이 보기에 사자는 굉장히 편하게 산다.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사자는 정말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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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은 부자는 먹고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식이 폭락하면 큰일이고, 이자율이 오르내릴 때마다 재산 상태가 크게 변한다. 아무리 좋은 부동산을 갖고 있어도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으면 언제 망할지 모른다. 얼룩말처럼 매일매일 일하는 건 아니지만 사자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를 신경 쓰고 관찰하며 대비해야 한다. 먹고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 그런 건 없다. 먹고사는 문제를 계속 고민하는 건 이 세상에 태어난 생물의 숙명이다. 죽을 때까지 고민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건 인간은 자산 축적이 가능하고, 살아갈 걱정이 이어져도 최소한 의식주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기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 걱정 없이 속 편하게 사는 건 아니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선이다.
‘의식주 걱정 없는 삶’ 기준점 높아
그런데 이 기준점이 되는 금액이 생각보다 크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살 집을 제외하고, 현 생활비 기준으로 90세까지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이 있을 때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 90세보다 더 살 수도 있지만 80세가 넘으면 지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기에 보완된다. 그러니까 예상보다 오래 살더라도 평생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금액은 자기 생활비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1년에 1억 원을 쓴다면 60세일 때 30억 원이 필요하고 50세라면 40억 원이 될 것이다. 1년에 5000만 원을 쓴다면 50세에 20억 원, 40세라면 25억 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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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온한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목돈보다 연금으로 충분한 돈을 받는 게 낫다고 본다. 매달 생활비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이라면 자금 운용이나 미래 수입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생활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연금, 아니면 아예 90세까지 생활할 수 있는 목돈. 이 정도가 남은 인생을 최소한 의식주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89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