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대결에서 승리하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고 또 그래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가 어렵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패배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패배하는 순간 그 이전까지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바로 그 활동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다. 사실, 이겨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설사 대결에서 승리하더라도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다. 승리한 바로 그 순간에도 기쁨보다는 패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을 더 크게 느낄 뿐만 아니라, 다음번에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승리가 언제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패배가 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인생은 오직 우승자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냉혹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고 또 패배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이다.
광고 로드중
조훈현은 한국의 바둑계에서 전관왕을 달성하고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을 하는 등 한때 세상을 호령한 천재 기사다. 하지만 그는 43세 때, 숙식을 함께 하며 가르친 ‘내제자’ 이창호에 의해 왕좌를 박탈당했다. 이창호는 불과 15세 때 처음으로 스승의 타이틀을 빼앗기 시작해 그 후로 5년 만에 자신의 스승을 무관(無官)의 신세로 전락시켰다.
그 충격으로 조훈현은 정신적인 방황을 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내제자로 받아주었던 스승,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로부터 오래전에 배웠지만 잊고 지내던 인생의 지혜를 새롭게 떠올리게 된다. 세고에는 제자들에게 바둑의 기술보다는 인격을 배우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조훈현에게 바둑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좋은 승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대와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승부를 위해서는 겨루는 사람이 모두 ‘패배를 우아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패배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우리가 그 아픔을 극복한다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침내 애연가연던 조훈현은 담배를 끊는 등 심기일전해 제자에게 승리하는 동시에 이창호가 꿈꿨던 전관왕의 목표를 좌절시켰다. 그리고 패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던 이창호에게 자신이 스승에게서 배운 승부의 지혜를 전해준다. 이처럼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패배를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좋은 승부의 경험들로 채우는 노하우도 전수해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 필요한 이유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