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TK (대구경북) 지자체장이 연초 “이재명이 (대통령) 돼도 어차피 TK”라며 흐뭇한 미소를 날려 경악한 적이 있다. 물론 국민의힘 소속이다(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국힘 대선 2차 경선 탈락 뒤 “서울시민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혀 나를 또 경악시켰다. 국힘에 정나미가 떨어진 건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고 대구시장직까지 중도 사퇴했던 위인이 대구시민께 사과 한마디 없이 서울시민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국힘 1차 경선 때 탈락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박정희가 되겠다”는 대선 출마 선언으로 사람을 놀래켰다. ‘새로운 시대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했다. 하지만 유신독재시대 대통령 박정희를 언급하는 통에 그 좋은 공약들은 한 개도 생각이 안 난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실시 다음날인 2024년 4월 11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지역별 당선자 인포그래픽.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한 선거로 기록됐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단 1개 선거구(경산)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이겼다. 우측 상단에 표시된 21대 총선(2020년)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철우 경북도지사. 경선에 나서며 내건 슬로건 ‘새로운 박정희’가 플래카드로 걸려 있다. 이 전 지사는 8명 중 4명을 뽑는 1차 경선에서 탈락했다. 뉴시스
TK 표심은 보통국민과 다르다. 국힘 출신 대통령이 파면 당해도 TK 일편단심은 변치 않는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52%인데 TK만 51%가 정권 재창출을 원한다고 했다(4월 말 KBS 의뢰-한국리서치 조사). 탄핵에 대해서도 TK는 달랐다. 대통령 파면 두 주 전 갤럽조사에서 일반국민은 “탄핵 찬성”이 58%, “반대”가 36%인 반면 유독 TK만 반대가 과반을 넘었다. 그러니 TK자민련 같은 국힘이 “탄핵 반대”를 외치며 수구꼴통 짓을 하는 것이다.
2025년 4월 30일 오후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선거 경선 결선투표에 진출한 김문수(왼쪽) 한동훈 후보가 TV토론에 앞서 스튜디오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대통령 배출한 TK, 통치이념으로 무장
과거 TK는 그렇지 않았다. 새로울 신(新), 벌일 라(羅)라는 한자가 말해주듯, 세계를 향해 활짝 열린 나라가 신라였다. 그래서 신라의 삼국통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TK는 신흥종교였던 유교이념을 적극 수용했고 일제 땐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으며 해방 전후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적이었다.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부정선거에 맞선 대구 고교생들의 2·28의거는 4월 혁명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대구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야경. 대구는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빌린 차관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대구 시민들이 시작하고 전국 규모로 확산시킨 국민행동이었다. 대구시민들은 이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공원을 마련하고 도로에 ‘국채보상로’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동아일보DB
● TK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지적까지
TK는 영남 선비문화의 중심지라는 역사성과 함께 ‘대프리카’로 불릴 만큼 대분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이 있다. 전근대적 폐쇄성, 배타적 파벌주의, 유사 가족주의, 근본주의적 성향이 여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보수정당 간판만 달면 찍어주는데다, 금배지만 달면 구석구석 경제 사회 문화까지 챙겨주고 챙김 받는 TK보스 정치(bossism)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인 2025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고 있다. 동아일보DB
● 일편단심 TK가 오만한 국힘 만들었다
수구주의는 변화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이상적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념이다(2004년 대통령 노무현은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틀렸다. 그건 수구였다). 선악의 이분법, 동질적 분위기, 지도자가 독점하는 진리, 음모론이 주름잡는 사회가 여기 속한다. 대구 보수가 이 흐름을 주도한다는 게 채장수의 지적이다. 극우 논란 속의 국힘과 윤석열에게 지속적으로 전국 최고의 지지를 보내는 곳이 바로 대구다.
제19대 대통령선거 유세전이 벌어지고 있던 2017년 4월 당시 대구수성을 국회의원이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원유세에서 대구경북의 여당 지지 성향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31년 만에 대구에 민주당계 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김 전 총리와 맞붙었던 후보가 현재 국민의힘 대선 최종 경선 후보인 김문수다. 하지만 김 후보의 지원유세에도 문 전 대통령은 대구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에 큰 차이로 뒤졌다. 유튜브 ‘김문수TV’ 캡처
장비빨 좋은 이비인후과가 새로 들어서도 허름한 옛날 동네 병원만 찾는 의리의 TK를 서울 깍쟁이처럼 표현하면, 바로 ‘수구’다. “우리가 남이가!”에 집착하는 전근대적, 폐쇄적 의식과 문화, 국힘 간판만 달고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뽑아주는 그놈의 의리를 믿고 국힘은 저토록 오만해진 것이다. 소속 대통령이 두번이나 탄핵당해도 가죽을 벗기는 개혁은커녕, 당에서 대통령감을 길러내긴커녕, 용병이나 업어와 권세누릴 생각에 만날 웰빙당인 것이다.
● 국민 우습게 아는 정치인, 단호히 찍어내시라
작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대구 1인당 지역내총생산(GDRP)이 3098만 원, 17개 시도 중 32년 째 최하위였다. 1인당 소득이 가장 낮다는 건 아니다. 대구에서 새로 창출된 부가가치의 합을 인구수로 나눈 값이 전국 꼴찌라는 의미다. 국힘을 주구장창 뽑아주고도 받는 건 없으니 대구는 참 ‘속’도 좋다.
2022년 8월 26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리에서 대구시민들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국민의힘 2차 경선에서 탈락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SNS에 남 긴 글. 경남 창년에서 태어나 경남도지사, 대구시장을 지냈지만 “서울 시민으로 돌아간다”고 적었다. 홍준표 페이스북 캡처
김순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