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1년만에 복귀한 수도권 전공의 인터뷰 “온라인으로 지침만 공유, 극단적 의견이 확대 재생산 병원 망할 때까지 버틴다? 의사로서 할 수 없는 생각”
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6.5. 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 김강현(가명·31) 씨는 병원 복귀 이유를 묻는 말에 “의사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생각”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수련병원을 떠났다가 복귀한 전공의는 현재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수도권 한 수련병원의 필수의료 진료과에서 수련을 이어나가는 김 씨는 지난해 2월 사직 후 상반기에 복귀를 결심했다. 복귀 후 그는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사직 후 수련병원에 복귀한 필수의료 전공의가 직접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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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처음 수련병원을 이탈한 이유에 대해 “병원은 선배, 동료, 후배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라며 “선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가 권리를 어느 정도 주장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한두 달 안에는 돌아왔어야 했다. 그 정도까지가 권리를 피력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처음 병원을 떠났을 때인 지난해 2월을 떠올렸다. 그는 “(수련에 지쳐) 다들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 쉬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며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전국 수련병원 레지던트 1년차 실기시험일인 1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12.17.뉴스1
당시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하면서 그를 비롯한 전공의들은 정부의 증원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씨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2000명이라는 숫자는 과학적이지 않다”며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뒤) 정부가 진료 유지 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고 정부를 향한 전공의의 불신은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지금까지 14개월째 이어지는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을 내놓았다. 별다른 대안 제시 없이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 배경에 의사 집단의 보상심리가 내재돼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생 과도한 경쟁과 공부량에 놓이며 ‘우리가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내면의식을 강화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편으로 이런 구조를 만든 사회의 잘못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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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료진의 모습. 뉴스1
이러한 폐쇄적인 논의 구조 속에서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극단적인 의견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사직 전공의들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의료계 내부에선 온라인 커뮤니티밖에 없어 점차 극단적인 의견을 주류 의견으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전공의들의 복귀에 대해서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는 병원 복귀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가 올라온 걸 발견하기도 했다.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욕설이 남겨져 있었다. 다른 리스트에서 복귀한 전공의들은 휴대전화 번호, 실물 사진 등이 올라오면서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에게 지난해 하반기는 ‘병원에 나가는 게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시로 들어가 이름이 추가로 올라왔는지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후 전공의들이 복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김 씨는 “미리 복귀한 전공의로 낙인이 찍혀 병원 생활 속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공의 복귀가 시작된 뒤 전공의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복귀 과정에서 괴롭힘 등 피해 사실을 신고받고 있다. 다만 김 씨는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는다”며 “이외 정부와 병원의 별도 지원책은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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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그럼에도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의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의술은 도제식으로 배우는데 의정 갈등을 거치며 사제 관계에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수련에 적극적이었던 교수마저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이미 진료지원(PA) 간호사도 대폭 늘었다. 오히려 PA 간호사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전공의 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추진 중인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시범사업’은 현장에서 실효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김 씨는 “현재도 수련시간은 주당 약 80시간 수준이며, 금요일과 주말 당직 등으로 여전히 과도한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모두가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하다 보니 일부 수련 프로그램이 생략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김 씨는 수련을 마치고 수련병원 교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보상심리야 당연히 있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좀 더 보람찬 일을 하고 싶어서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