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날개를 달았다.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이 무죄로 뒤집히면서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끈질기게 붙어있던 사법리스크를 떼고 가뿐히 대선 후보가 될 듯하다. 판결이 나온 뒤 그는 “사필귀정 아니겠냐”고 했고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하 직함 생략)은 “별의 순간이 왔다”고 최상급의 치사를 날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뒤 활짝 웃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거짓말 허가증 내준 2심 판결
그래픽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재명은 안 된다”고 부르짖는 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이재명 발언에도 참말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듣는 이의 머리칼을 쭈뼛 솟게 만드는 마라 맛 말이지만 진심이란 그렇게 무심코 터져나오는 법이다.
● 이재명의 참말 “권력행사는 잔인하게”
2016년 김어준의 유튜브에서 “저는 권력행사를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고백이 대표적이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라고 덧붙이긴 했다. 그러나 대선 패장이 빠르게 당권을 장악하고 ‘오너’로 올라선 과정을 돌이켜 보면, 참말이라 믿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표가 3월 초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자신의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검찰과 당내 일부 인사들이 ‘짜고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모습. 자막은 유튜브가 음성을 인식해 자동으로 표출하는 자막으로, ‘자고’는 ‘짜고’의 오류다. 매불쇼 화면 캡처
● 홍위병 같은 문제인물 색출과 숙청
실제로 개딸(이른바 ‘개혁의 딸’) 등 강성 당원들은 ‘수박’ 색출에 돌입했다. 원외 강성 친명그룹이던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 강위원은 표결 전부터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했다(작년 총선 ‘자객 공천’ 등을 통해 민주당 최대계파로, 신주류로 급부상한 의원들이 더혁신회의 소속이다).
비명계 의원들이 수백 수천통의 욕설문자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표결 뒤 겁에 질린 의원들이 ‘부결 인증샷’을 올려야 했다. 민주당 홈페이지 국민응답센터엔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해당행위 5인 이상민, 김종민, 이원욱, 설훈, 조응천에 대한 징계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수만 명 동의를 받기도 했다(결국 이들은 당을 떠났다). “내가 그들을 구체적으로 제거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이재명의 말 그대로 남의 칼로 사람 잡은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다음 날인 2023년 9월 2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의 빈 자리와 ‘단식투쟁 23일차’라고 쓰여진 피켓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정 최고위원은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에서 찬성표를 행사한 소속 의원들을 겨냥해선 “가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원내대표로 있던 비명계 박광온 의원은 가결 직후 원내대표직을 사임했다. 동아일보DB
● 이재명의 참말 “정치보복은 몰래 하지”
어디 박광온 뿐이랴. 대선 경선과 당 대표 선거 때 이재명과 맞섰던 박용진은 총선 공천에서 ‘의원 평가 하위 10%’라는 ‘시스템’에 의해 비명횡사 당했다. 역시 이재명은 순결하고도 고고하게 아무 짓도 안했던 것이다. 당원과 국민, 그리고 시스템에 의해 일극체제가 형성됐을 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3회국회(임시회) 2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의원은 당시 경선 과정에서 의정활동 평가 현역 하위 10% 통보를 받았고 결국 경선에서 탈락해 같은 해 4월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동아일보DB
참으로 반지르르한 배암 같은 소리다. 이보다는 “세상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정치 보복을 공언하느냐. 하고 싶어도 꼭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몰래 하지”(2022년 2월 27일)가 이재명의 참말이었다. 마오쩌둥은 애국주의로 무장한 분노청년들을 동원해 문제의 인물들을 처단하는 문화혁명(1964~1976)을 벌였다. 홍위병이 본때만 보이면 나머지 인민들은 알아서 자기검열을 하는 전체주의로 돌입한다. 그래서 모골이 송연한 것이다. 민주당 뿐 아니라 나라가 그리될 것 같아서.
● 개딸 동원한 일극체제, 전체주의 징조다
26일 오후 이재명 대표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에 모여 있던 이 대표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중국 공산당은 권력분립을 부정하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통일된 의행합일(議行合一)을 강조한다. 거대 야당 ‘이재명의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그대로 의행합일이 된다.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을 허물 때 무너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프랑스혁명의 가장 비극적 측면이 발발 10년 뒤 새로운 프랑스가 과거의 프랑스와 흡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적으로 무(無)도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하지 않고도 누구 못지않게 위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은 철저하게 현대적 인물이었다(제임스 웰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이재명에게 선함이나 위대함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권력자들은 자신이 구사하는 용어와 수사법의 신봉자이자 포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사법 리스크는 넘어섰으되 신뢰 리스크는 어찌 넘을지, 아니 안 넘어도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