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사즉생”] 오너가 직접 변화-혁신 독려 주문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신화 시작 신경영 선포로 세계 1류 이끌어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1983년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도쿄 선언 이후 임원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위쪽 사진). 아래쪽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 선언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글로벌 1등 메모리 반도체’ 위상은 1983년 2월 8일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투자하겠다”는 이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에서 시작됐다. 이 창업회장이 일본 도쿄에 있을 때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며 이 사실을 대외에 공표한 것이다. VLSI는 반도체 중에서도 당시 최첨단 기술로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때였다. 그러자 미국 인텔이 삼성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고 일본 미쓰비시가 ‘삼성이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는 등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 창업회장은 도쿄 선언 후 반도체 중에서도 D램을 핵심 먹거리로 낙점, 속전속결로 대규모 투자를 추진했다. 도쿄 선언 6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64Kb(킬로비트)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약 10년 뒤인 1992년 64Mb D램 개발, 1994년 256Mb D램 개발 등 ‘세계 최초’ 타이틀을 연달아 달성하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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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대회장은 1995년에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으로 잘 알려진 과감한 결단에 나섰다. 삼성 휴대폰의 품질 논란이 회사 안팎으로 제기되자 휴대폰, 팩시밀리 등 15만 대를 사업장 운동장에서 불로 태운 사건이다. 당시 불에 탄 기기 15만 대의 가치는 500억 원으로 회사 전체 이익의 5%에 달했다. 삼성은 이를 혁신의 계기로 삼아 이듬해인 1996년 휴대폰 개발을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고 1999년 세계 최초 TV폰, 2006년 1000만 화소 카메라폰을 잇달아 내놓았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