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어떤 기억은 사무쳐 평생 잊지 못할 이름으로 남기도 한다. 나는 우유를 보면 재호가 떠오른다. 눈사람을 보면 고은이 떠오르고, 손으로 접은 쪽지를 보면 우정이, 카세트테이프를 보면 기원이 떠오른다. 재호, 고은, 우정, 기원. 누군가에겐 평범한 이름들이 나에게는 우유와 눈사람과 쪽지와 카세트테이프로, 그에 깃든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 몇몇은 여전히 교우하고, 몇몇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이름들은 나를 뭉클하게도, 미안하게도 만든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졸업 후에 우리는 꿈 대신 밥을 선택했다. 당장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첫 월급은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거라며 보미가 배즙을 보내줬을 때, 네가 어떤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이 비싼 걸 보내줬는지 묻지 못했다. 그저 고마워. 배즙이 너무 달아서 목구멍까지 알알했다. 직장과 상황이 자주 바뀌는 사이에도 우리는 가끔 만났다.
광고 로드중
보미는 편지와 호두과자 다섯 알을 두고 갔다. ‘수리야. 네가 지치고 힘겨울 때도 넌 여전히 햇살 같은 아이란 거 잊지 마. 훗날 쓰게 될 네 글이 기대된다.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건 호두과자 몇 알뿐이지만, 또 보자.’
그저 고마워. 동그랗고 말랑하고 다디단 호두과자를 까먹으며 나는 촬영장으로 출근했다. 허무하게도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연결될 연도, 접해질 점도 없는 우리는 미숙하게 헤어졌다. 보미는 사라졌다.
언젠가 그늘진 운동장에서 내가 말했지. “나 밝아지려고 노력할 거야.” 그때 네가 대답해줬어. “노력하지 않아도 넌 밝은 사람이야”라고. 그저 고마워만 했던 게 미안해. 후회는 그림자가 길다. 이제라도 호두과자 다섯 알에 빚진 마음을 보낸다. 그간 부지런히 글을 썼으니 우연히라도 읽어주길 바라면서. 보미야. 잘 지내니. 호두과자 가게를 지날 때마다 널 생각해. 네가 준 기억으로 나는 여전히 밝은데,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보미야. 또 보자.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