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보름째 수습 난항 日 땅꺼짐 트럭 빠진 싱크홀 점점 커져… 하수 흐르고 악취에 구조 어려워 “복구에 적어도 2, 3년 걸릴 듯”… 50년 넘는 인프라 전국서 급증 재정 압박에 “유지 관리 뒷순위”… 수리 필요해도 대책 없는 곳 늘어
10일 야시오시 싱크홀 현장 상공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본 모습. 굴착기가 작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이상훈 도쿄 특파원
● 사고 발생 보름 넘어서도 수습 안 돼
싱크홀이 발생한 야시오시청 인근 ‘주오잇초메(中央一丁目)’ 사거리를 찾았다. 사고 발생 10일째였던 이날 역시 사고 지점에서 반경 100m가량 밖에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과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다.
일본 매체 기자 10여 명이 바리케이드 밖에서 카메라로 찍으면서 사고 수습 현장을 취재했다. 싱크홀 구멍은 보이지 않지만, 굴착기 등 중장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출입 금지 구역을 관리하는 인부에게 ‘언제까지 들어갈 수 없냐’고 묻자 “지금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불편하겠지만 밖으로 돌아서 이동해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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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사고 수습에 생활 불편도 이어지고 있다. 하수도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 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들에게 당분간 물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하는 목욕은 당분간 자제하고 설거지나 샤워를 할 때도 되도록 물을 잠그고 꼭 필요할 때만 수도꼭지를 틀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연이어 발생한 싱크홀로 주민 불안 커져
7일 오후 일본 도쿄 인근 야시오시 교차로 싱크홀(땅 꺼짐) 현장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구조 및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처음 발생한 싱크홀은 지름 5m 크기였지만 도로 함몰이 점점 커지면서 지금은 지름 40m의 거대한 구멍이 됐다. 야시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싱크홀 함몰이 계속 진행되면서 지금은 지름 40m, 깊이 15m 크기의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토사가 계속 붕괴돼 구조 및 복구 작업은 진행과 중단을 반복하면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싱크홀에 빠진 운전자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장 붕괴 우려가 커지면서 소방 당국은 9일 중장비를 이용한 인명 수색 작업을 중단했다. 사고 당일에는 구조대와 운전자가 대화도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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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언제 수습될지는 기약이 없다. 지름 4.75m인 거대한 하수도관에 하수가 흐르고 황화수소로 악취가 발생해 하수도관에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자발적인 물 사용 자제를 당부하고 있지만 하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하수도관에 구멍을 뚫거나 지상에서 직접 땅을 파는 방식 등 다양한 구조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안전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아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자체가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니 파손된 하수도관을 복구하는 데는 적어도 2, 3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됐다.
● 재정 부족으로 낙후 인프라 대대적인 개선 어려워
일본에서는 야시오시 싱크홀 사고가 특정 지역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인프라 노후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대규모로 건설된 SOC 상당수가 현행 안전 기준에 미흡하거나 노후화돼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 역시 1983년 건설된 철근 콘크리트 하수도관에서 발생했다. 40년 넘게 사용한 데다 구부러진 곳에서 물 흐름이 느려지고 오수에서 발생하는 악취 가스가 하수도관을 부식시키면서 조금씩 망가진 게 쌓여 거대한 싱크홀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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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다리 등 다른 인프라 역시 노후화된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 전체 차량 통행용 다리 73만 곳 중 50년 이상 된 곳의 비중은 2023년 기준 37%에서 2040년에는 75%로 증가한다. 일본 전역 1만2000여 개에 달하는 터널 역시 50년 이상 되는 곳이 같은 기간 25%에서 52%로, 수도관은 9%에서 41%로 많이 늘어난다.
도로, 수도관 등은 건설된 지 50년이 지나면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거나 새로 지어야 한다. 하지만 재정 압박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일본의 건설투자 총액은 1992년 84조 엔으로 최고 수준에 달한 뒤 지속해서 감소해 2010년에는 42조 엔으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최근에는 다소 증가해 72조 엔 수준으로 늘었지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최근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노토반도 등에 지원이 집중됐다.
오랫동안 선진국으로 고속도로, 철도 투자를 계속해 새로 짓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크지만, 국가부채 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 인프라 건설 및 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크다. 일본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해 9월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7%다. 일본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출을 늘리고 있는 방위비, 반도체 보조금 등에 노후 인프라 개선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도로 교각 6만 개가 수리 등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2023년 말 기준으로 20% 정도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후 인프라 사고는 향후 한국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보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한국 지자체의 부실한 재정을 고려하면 중앙 정부의 대규모 지원 없이 수도, 도로 등 기본적인 인프라 노후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시오시에서
이상훈 도쿄 특파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