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5년 신춘문예 당선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류한월, 김준현, 윤주호, 장희수, 박진호, 나혜진, 정의정, 문은혜, 김민성.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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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혹시 1월 1일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다짐하셨다가 작심삼일에 그친 분들이 계신가요. 2025년 국내 처음으로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당선 작가들에게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작가별로 나의 인생 책, 추천 사유, 책 속 한 문장을 정리했습니다. 설 연휴를 마무리하며 신춘문예 ‘백년둥이’ 작가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책들을 펼쳐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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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 중편소설 당선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한강 지음·열림원
만 스물여덟 살의 작가가 미국 아이오와에서 만난 다국적 작가들의 이름을 소제목으로 쓴 책이다. 삼 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베트남, 아르헨티나, 팔레스타인, 튀르키예 등지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작가는 기억하려고 한다. 기록하는 사람이 아닌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되뇔 때의 울림이 오래 남았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사람. 지면이 아니라 내면에 먼저 지나가 버릴 모든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 십 년 전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던 시절 새벽이 깊도록 불 켜진 작가들의 방 창문을 보며 우리는 ‘쓰는 공동체’라는 유대감을 느꼈다. 그건 손을 잡거나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다. 얇고 가벼운 문고본의 모습으로 단정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국의 작가들이 살아온 삶의 수많은 궤적을 책은 기억하고 있다.
● 책 속 한 문장 “나는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잊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때까지, 다만 그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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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 단편소설 당선자
◇열한 계단/채사장 지음·웨일북
● 책 속 한 문장 “세상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과 대결할 때 그 힘을 비축하게 하고, 세상에 무릎 꿇게 되었을 때에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존감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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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수 / 시 당선자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음·김춘미 옮김·비채
무라이 슌스케 설계사무소 직원들이 도서관 설계 공모를 위해 산속 별장에서 합숙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습 건축가이고, 그의 스승은 과묵하다. 그 탓에 주인공은 스승의 건축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며 마치 ‘츤데레’처럼 툭툭 내놓는 스승의 말을 읽으면 괜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도드라지는 갈등이 없어도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자니 어딘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별일 없어 보인대도 각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니.
● 책 속 한 문장 “공사하는 사람들은 무라이 슌스케의 이러한 디테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손을 움직였을까. 그들의 생각은 끝내 알려지지 않는다 해도, 한 일은 이렇게 남는다. 선생님의 설계는 시공자의 긍지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류한월 / 시조 당선자
◇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지음·김난주 옮김·민음사
이 책은 곤충 채집을 위해 황량한 땅으로 떠난 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 속 마을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기묘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기이한 설정 속에 인간 실존의 불안, 억압과 자유, 균질화된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흠뻑 담겨 있다.
타인의 빛나는 개성은 회색 종족에게 자신의 결핍, 즉 무채색의 단조로운 삶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이다. 소설은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기보다 회색에 섞여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촉구한다.
소설은 1964년 테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원작자인 작가가 직접 각본을 담당했다. 흑백 영상 속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언덕과 그 질감이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 책 속 한 문장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윤주호 / 희곡 당선자
◇파수꾼/이강백 지음·지만지드라마
● 책 속 한 문장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
나혜진 / 동화 당선자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백선희 옮김·열린책들
인간들이 지구를 망가뜨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 탈출했고, 파피용 안에서도 인간들은 욕망을 좇다 망가졌다. 일을 벌여 망가뜨리기만 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 사회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본인의 선택에 대한 회피와 도망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작게는 개인의 선택에, 크게는 지구의 환경과 인간 사회에 대한 선택으로부터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 책 속 한 문장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김민성 / 시나리오 당선자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지음·김진준 옮김·김영사
작가로서 그의 철학과 인생관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글쓰기가 정체된 작가뿐만 아니라 새로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이나 킹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에게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을 엿보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필독서로 통한다.
저자와 나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힘겨운 글쓰기 여정을 묵묵히 지지해 준 아내의 존재다. 아직도 나는 아내의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미완의 작가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킹처럼 당당히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나의 아내에게 바칩니다!” 그날을 향한 나의 글쓰기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책 속 한 문장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정의정 / 문학평론 당선자
◇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 지음·이상길 옮김·문학과지성사
● 책 속 한 문장 “내겐 ‘불평등’이라는 말조차, 착취라는 적나라한 폭력의 실상을 현실감 없게 만드는 완곡어법처럼 비친다.”
문은혜 / 영화평론 당선자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지음·김선형 옮김·문학동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이상만 추구하던 무책임한 과학의 산물이다.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버려진 괴물, 사랑을 갈구한 아담으로서 무모한 과학실험이 불러온 재앙을 경고한다. 생명복제 기술이 사회적 합의보다 훨씬 앞선 오늘날 사회에서 생명에 관한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과 양육이 개인의 도덕 발달에 미치는 영향, 이질감이 주는 혐오와 편견 등에 관하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 책 속 한 문장 “제발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한테는 잘해주면서 나만 짓밟지 말아 주시오.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잖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