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남극 경쟁 잇는 우주 경쟁 이스라엘 “우주에서 미사일 요격”… 일정 고도 넘으면 영공 침해 아냐 ‘어디서부터 우주인가’ 정답 없어… 머스크 “우주 식민지 건설” 주장도 천체 소유권 외치면 우주조약 위반… ‘공유지’ 남극엔 과학기지만 허용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용 ‘애로’가 시험 발사되는 모습. 미 해군 제공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사실 애로가 특별한 요격미사일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미사일도 대기권 밖에서 요격이 가능하다. 가령 2014년 최초 시험 발사에 성공한 인도의 요격미사일 PDV는 150km보다 높은 고도에서 적의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다. 또 튀르키예가 구입한 러시아의 S-400은 최대 요격 고도가 185km이고, 미국이 일본과 함께 개발한 SM-3는 1000km에 달한다.
인류 최초의 우주 전투를 수행했다는 이스라엘군 주장의 진위는 어디까지 지구고, 어디서부터 우주가 시작되느냐의 질문에 달려 있다. 의외로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여러 의견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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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지구 대기. 주황색과 녹색의 층이 국제항공연맹(FAI)이 주장하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 ‘카르만선’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 다음으로 과학계는 대기권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유무로 판별한다. 대기권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온도가 낮아지는 대류권, 이어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오히려 온도가 높아지는 성층권, 다시 온도가 낮아지는 중간권, 그리고 또다시 온도가 높아지는 열권으로 구성되며, 전체 고도는 약 1000km다. 국제우주정거장을 비롯해 지구 저궤도 위성들은 고도 약 80km에서 시작되는 열권에 위치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군은 우주인을 ‘고도 약 80km보다 높이 비행하는 자’로 정의한다. 미군에게 우주가 시작되는 고도는 약 80km인 셈이다. 나사는 과거에는 카르만선을 따랐지만 2005년부턴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미군이 나사의 기준을 따르는 대신 나사가 미군의 기준을 따른다는 게 중요하다.
좀 더 전투적인 기준도 있다. 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존 쿠퍼는 1952년 미사일로 방어할 수 없는 상공이 바로 우주라는 기준을 내놓았다. 이는 과거 해양법에서 당시 해안포의 사거리가 3마일(약 4.8km) 정도라는 점에 착안해 영해를 ‘3마일 이내’로 삼은 걸 본뜬 결과다.
어느 높이에서 우주가 시작되는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기’까지만 국가의 영공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가령 북한의 인공위성이 한국의 육해공군 본부가 모두 모여 있는 충남 계룡시 상공을 통과해도 그 고도가 ‘우주’에 해당되면 영공 침해가 아니다. 미군의 우주 고도 기준이 과학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건 소련 상공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역사에 기인한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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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 영국 소련 등이 어떤 국가도 우주 공간에 주권을 가질 수 없고 개발 이익을 독점할 수 없다는 조항을 담은 우주 조약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 조약은 “외계는 사용, 점유, 혹은 그 밖의 수단으로 국가가 주권을 주장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한다. 쉽게 말해 우주의 영토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회사나 개인의 경우에는 어떨까? 회사나 개인에 ‘국적’이 있는 한 결과는 같다. 천체의 일부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우주 조약 위반이다.
‘그깟 조약 위반이 대수냐?’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듯싶다. 그들 눈에 우주는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인 공유지로 보일 수 있다.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터다. 사유재산이 되지 않는 한 공유 자원은 그저 마구 고갈될 따름이라는 거다.
다만 잘 알려진 공유지의 비극과는 달리, 정반대로 국가나 시장의 개입 없이 공유지가 효율적으로 사용 및 유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가르쳐지지 않는다. 미 인디애나대 엘리너 오스트롬이 평생 동안 연구한 결론이다. 심지어 오스트롬은 이걸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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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영국, 칠레가 각자 주장하는 영토는 서로 겹치기까지 했다. 1952년에는 사고로 불타버린 자국 기지를 다시 지으려 접근하던 영국 배를 아르헨티나가 사격한 전례도 있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고 아르헨티나는 영국에 사과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 7개국에 미국, 소련, 벨기에,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까지 더해 총 12개국이 1959년 이른바 ‘남극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남극 조약은 기존에 이뤄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것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영토 주장도 허용하지 않는다. 군사기지의 건설, 핵폐기물의 유기, 핵무기의 폭발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허용되는 걸까? 바로 과학기지다. 과학기지는 앞선 7개국의 영토 주장과 상관없이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있다. 즉, 남극 조약의 명시적 목표는 과학과 평화의 증진이다. 엉성한 듯한 남극 조약이 1961년 발효된 이래로 지난 60여 년간 남극 대륙은 완벽히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해 왔다.
남극 대륙에서 국가 간의 대결이 아예 없지는 않다.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해 과학기지를 더 많이 짓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1953년에 지은 자국의 에스페란사 기지를 1970년대에 일반인이 와서 머물 수 있도록 개조했다. 1978년 이 기지에선 남극 대륙 최초로 사람이 태어났다.
칠레는 아르헨티나의 책략을 경계했다. 1984년 칠레는 체육관, 방송국, 학교, 교회, 우체국, 심지어 기념품 상점까지 갖춘 기지인 비야 라스 에스트레야스를 지었다. 칠레 국적의 파블로 카마초는 거기서 잉태되고 태어났다. 영국과 칠레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가 겹치지만, 영국이 아직까지 반격에 나서진 않은 상태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