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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악의 선택’시 남을 심리적 후유증[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입력 | 2024-04-11 03:00:00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결국 국민들은 투표를 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4 총선을 4일 남겨둔 토요일이다. 그래서 총선의 결과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선거가 국민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는 알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이는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도저히 지지하기 힘든 사건, 무능, 불공정, 비리, 망언, 범죄투성이다. 그러니 다수의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고 투표하는 정당과 후보를 편드는 데 쩔쩔 매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의 무능, 비리, 망언, 범죄 등을 혹시 몰라서 지지하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차마 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도 반대 쪽보다는 낫다. 당신은 그들의 더 심한 문제들은 모르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차악의 선택을 하는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이번 차악의 선택은 선거가 끝나고 나서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 병들게 할 것 같다. 과거에는 그래도 정치인들이 잘못이 드러나면 인정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그 잘못이 잘못이라고 얘기하면서도 그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봐서 지지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처럼 뻔히 드러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당과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기억에 없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유죄판결을 받아도, 어린아이도 알 만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하면서 그런 적 없다고 우기는 정당과 후보들을 지지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회심리학에서 이런 불편함을 인지부조화라 부른다. 자신의 생각(태도)과 행동 간에 불일치가 일어날 때, 인간은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인지부조화는 그 불일치가 클 때, 그 행동을 강요가 아닌 스스로 선택했을 때, 행동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철회할 수 없을 때, 자기 행동이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더 심하게 일어난다. 인지부조화는 강력해서 인간들은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꽤 멍청한 짓도 할 수 있다. 담배를 피운 지 얼마 안 된 젊은이는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담배의 해로움을 들을 때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십 년간 담배를 피워온 사람은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과 그 담배를 피우는 자기 행동 사이에서 꽤 오래 인지부조화를 경험한다. 결국 그 불편함을 없애는 방법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바꾸기도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인생은 짧고 굵게 사는 거라고.

사전투표율이 역대 총선 최고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결과에 관계없이 찜찜하고 불편할 거다. 잘못에 대해 인정도 반성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 정치인들을 지지한 우리 국민의 그 인지부조화는 앞으로 우리의 마음속 무엇을 바꿀까? 그것이 정의, 도덕, 윤리, 공정과 같은 영원히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가치가 아니어야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