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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블랙홀’에 인재 쏠림 우려… 이공계 활성화 대책도 필요”

입력 | 2024-03-28 03:00:00

‘의대 증원’ 격랑 속 취임한 박상규 제28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박상규 제28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은 “의대로 우수 인재가 편중되고 반수생이 늘어나는 건 국가적 인재 육성 차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공계열 인재 양성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의대 블랙홀’ 때문에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인재가 안 나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공대에 진학하면 ‘패배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면 안 됩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전공의 및 의대 교수와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이공계 사기를 진작시킬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박상규 제28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63·중앙대 총장)은 25일 취임 후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의대 증원 논란이 이공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주요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기 시작한 날이었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 총장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의대 블랙홀’이 이공계 인재를 집어삼키는 상황을 더 우려했다. 그는 대교협 회장이기도 하지만 의대를 보유한 대학의 총장이기도 하다.

―의대 증원 후 이공계 인재 양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나라가 AI 경쟁력을 갖고 앞서 나가는데 우리는 AI 분야를 가르칠 교수를 뽑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의대 증원이 결정됐다. 이공계 연구개발(R&D) 예산도 줄어 학생들의 실망감이 매우 크다. 과거에는 의대를 다니다 중간에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가끔 있었는데 앞으로 그런 학생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 서비스 질 향상도 중요하지만 이공계 인재 양성이 안 되면 향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공계열 투자 확대,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 등 처우 개선, 박사후 연구원의 법적 지위 보장 등을 해야 한다.”

―의대 교수들은 의학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24일 ‘양질의 의학 교육을 위해선 교수 확보, 교육 인프라가 확충돼야 하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성명서를 냈는데 공감하고 있다. 당장 교수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중앙대가 2022년 광명병원을 새로 짓고 2년간 교수들을 굉장히 많이 뽑아야 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지방은 원래도 교수 뽑기가 쉽지 않다. 한 번에 의대 정원 65%를 증원했는데 채용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개별 대학에서 교수를 구하기 어려울 거다. 증원이 문제가 아니고 교육의 질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서울 소재 8개 의대에는 증원분을 배정하지 않았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지역 의료가 어려우니 지역 국립대 의대에 정원이 더 많이 배정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교협 회장으로서 (여러 대학의 입장이 다른 만큼) 정원 문제를 언급하긴 어렵다. 일단 모두 떠나서 정부가 빨리 의사단체와 진지한 대화를 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의대생 유급을 막을 데드라인은 언제인가.


“다음 달 중순이다. 그때 개강해도 여름 방학이 없어진다. 그 이상 개강을 미루긴 어렵다. 시간이 2, 3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정부와 의사단체가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취임사에서 우수한 유학생 유치를 강조했다.


“학생 충원이 어려워지면서 대학들이 유학생 유치에 뛰어든 지 오래다. ‘2일만 수업 듣고 5일은 지역 내 배달 업체와 연결해준다’는 조건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알선하는 유학원도 있다. 외국인 유학생으로 지방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걸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잘 교육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독일 싱가포르 일본 등도 외국 인재 유치를 통해 인구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과거 우리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국가와 대학도 과감한 국가적 투자로 세계대학순위가 상승하는 상황이다. K컬처 같은 문화적 요인 외에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을 선택할 만한 경쟁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한국 학위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주력하는 첨단 분야는 석박사 과정의 연구 인력을 적극 유치하고 한국에 정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등록금 문제 해결에 역량을 쏟겠다고도 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190개 대학 중 26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지난해 17곳에서 늘었다. 대학 사이에선 ‘서울 대학들이 먼저 올려달라’는 요구가 많다. 하지만 서울 소재 대학이 올리면 다들 올릴 텐데 등록금 동결이 정부 기조인 상황에서 고민스럽다. 내년에는 인상을 고민하는 대학이 더 많을 거다. 대교협이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등록금을 인상하면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교육부가 폐지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

―대학 재정이 얼마나 어렵나.


“얼마 전 모임에 약간 늦은 총장이 ‘도서관 벽돌이 빠졌는데 대학 재정이 어려워 직접 끼우고 왔다’고 농담했다. 상당수의 대학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공공요금이 30% 이상 인상됐고 물가 상승으로 인건비 등의 지출이 늘었다. 학생들도 이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고 이해하더라.”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 실태는 어떤가.


“2020년 기준 한국 대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8105달러)의 67.5%(1만2225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은 OECD 평균의 199.8%, 영국은 163.1%, 일본은 108.7%다.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후속 세대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대다수 대학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던 극소수 대학 때문에 재정 지원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이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을 긍정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