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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30대 기업 새 사외이사, 관료출신이 절반… ‘관피아’ 부작용 우려

입력 | 2024-03-05 03:00:00

[30대 기업 사외이사 분석]
교수 출신의 2배… 경제관료 선호
“現정부 경제정책 대응의도” 분석
정부 조직 등 복귀 고려한 포석도… “경영인 출신 많은 美와 반대의 길”




삼성전자는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신 전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 1차관과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경제 관료다. 에쓰오일도 3월 주총에서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올 들어 사외이사로 관료 출신 인사를 대거 늘리고 있다. 4일 본보가 코스피 상장사 1∼30위 기업(시가총액 순위)의 신규 사외이사 후보 28명을 분석한 결과 13명(46.4%)이 관료 출신이었다. 관료에는 정부 부처 장차관 등을 경험한 인사, 공공기관 출신, 법원과 검찰청 등 법조 공무원 출신을 모두 포함시켰다. 관료 출신은 교수 출신(7명)의 두 배에 육박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4월 국회의원 선거, 미국에선 11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제 정책 변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 기업마다 글로벌 감각이 있는 관료를 모셔 오는 게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료 출신들이 서로 밀고 끌어주는 ‘관피아(관료+마피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관료 중에서도 경제관료 선호도 높아

본보 분석 결과 올해 30대 기업의 신규 사외이사 후보 중 관료 출신 비율은 46.4%였다. 2021∼2023년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던 교수 출신 사외이사는 올해 25%에 그쳤다. 올해의 경우 3월 현재까지 발표된 인사를 기준으로 했고, 연간으로 하면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사외이사 후보는 관료 중에서도 특히 경제, 산업 관련 부처에서 경력을 쌓은 고위직 인사가 많았다. 올해 새 사외이사로 추천된 인사 중 관료 출신은 1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경제관료 출신은 7명이었다. 판검사로 활동했던 법조인 5명,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행정관료 출신이 1명이었다. 분석 시기를 최근 3년(2021년 2월∼2024년 2월)으로 넓혀도 관료 출신 사외이사 36명 가운데 경제 관료가 20명(55.6%)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은항 전 국세청 차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했다. 삼성SDS는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을 사외이사로 낙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거치고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서 사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 정승일 트러스톤자산운용 고문과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허태웅 경상국립대 산학협력중점 교수도 각각 삼성전기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사외이사로 정해졌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과)는 “3년 차로 들어선 현 정부 경제 부처의 정책 현안을 자세히 파악해 대응하려는 기업의 의도가 읽힌다”라며 “특히 이번 정권이 기업 친화적인 성향을 보이는 만큼 교수보다 정부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관료에게 더 큰 방점을 찍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 관료 사외이사가 다시 장차관 복귀할 수도
추후 정부 조직으로 복귀하거나 정계 진출을 할 가능성도 기업들이 관료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미래 대관 채널 확보라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실제 한덕수 국무총리의 경우 2021년 에쓰오일의 사외이사로 선임돼 1년간 임기를 보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도 기업의 사외이사를 경험한 뒤 다시 정부 부처 장관으로 중용됐다.

반면, 그간 사외이사 후보에서 그 비중을 늘려 가던 경영인 출신은 올해 불과 5명(비중 17.9%)으로 전년(10명·28.6%)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두 명 이상의 외부 기업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린 곳은 변재상 전 미래에셋증권 대표와 이사무엘 인다우어스 공동창립자를 선임키로 한 네이버가 유일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경영 현장 경험이 많은 경영인 출신을 사외이사로 많이 데려오는데 한국은 이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기재부 관료들이 총리, 경제 부총리, 대통령실경제수석 등 주요 자리는 물론이고 대통령실비서실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으로까지 외연을 넓히면서 ‘관피아’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외이사로 관료가 많이 영입되는 현상은 한국이 아직 규제 중심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기업은 자기들이 훌륭한 고유 기술을 개발해도 정부와 소통이 되질 않으면 이를 상업화할 수 없다는 장벽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