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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창업? 경험담-지원금 수소문부터[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입력 | 2024-02-18 23:27:00

창업이 최선인지 다시 한번 고민 후
먼저 도전한 선배들의 시행착오 학습
퇴직금을 섣불리 투자하는 건 위험
창업 지원사업-공모전 알아보기를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수년 전 퇴직을 하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회사 밖에서 어떻게든 터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어도 번번이 실패에 그쳤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자존감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영영 두 번째 출발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될까 봐 늘 안절부절못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그러다 창업을 결심하였다. 내가 구상한 사업은 성인 대상 교육센터였다. 경쟁업체와의 차별점으로 오랜 직장 커리어를 내세워 승부수를 띄워 볼 생각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다 성공할 거라 말했다. 사업해도 잘할 사람이라는 직장인 시절의 별명이 드디어 현실이 되냐며 응원해 주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보란 듯이 사업장을 열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큰 손해만 보고 정리하고 말았다. 막상 시작해 본 사업은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창업을 통해 내가 잃은 것은 터무니없는 허세였고 느낀 점은 세상의 높은 벽이었다. 혹시 퇴직 후 창업을 고민 중이신 분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이 세 가지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다.

첫째, 과연 창업이 최선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게 창업은 돌파구였다.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보내놓고 탈락하기를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재취업 시장에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평생 할 자신이 없었다. 쉽게 말해 나와 세상의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곳은 나를 찾지 않았고 세상이 원하는 곳은 내가 꺼려졌다. 그렇다면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흡족한 내 자리, 즉 창업은 내게 최선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었다.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신생기업의 70% 가까이가 5년 이내에 폐업하며, 1년 안에 문 닫는 곳도 셋 중 한 곳이라 한다. 창업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증거이다. 치열한 경쟁과 다양한 고객 니즈, 변화하는 생활 패턴까지 창업 후 넘어야 할 산들은 높고도 험하다. 게다가 익숙지 않은 분야라면 더욱 실패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그게 본인일 줄 어찌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도 모두 처음에는 그렇게 장담했을 거라고 말이다. 가깝게는 내가 그랬다. 성공해서 증명해 보이리라고 큰소리쳤다. 결과적으로 나 역시 실패한 70%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배우기까지 지나치게 큰 수업료가 들었다.

둘째, 과도한 자신감은 버리자. 나는 무조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일에 관해서야 이미 회사에서 능력을 검증받았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 기존부터 업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과 인터뷰도 많이 했다. 틈틈이 파트 타임으로 일하며 회사 밖 물정에 대한 감도 익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들어가자마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갈수록 감당하기 버거워 크게 당황하였다. 모든 일을 하나하나 손수 하려니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관공서 업무는 물론 사무실 공사까지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분야를 하느라 실수도 잦았다. 결국, 모든 게 착각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이룬 성과는 나의 실력이 아닌 조직의 역량이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창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먼저 퇴직한 선배들의 창업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그들이 앞서 겪은 시행착오는 나 또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한 점은 내 것에 반영하고 잘못된 점은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센 창업 전쟁에서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그들의 생생한 경험과 조언은 나의 퇴직 후 삶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귀한 가치가 있음을 명심하고 귀담아듣자. 회사 생활만 했던 초보 창업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는 것만이 그나마 해법이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퇴직금을 귀하게 여기자. 내게는 젊은 시절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퇴직금 일부도 아예 사업 자금으로 염두에 둘 정도였다. 창업을 어렵지 않게 결정한 이유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투자라고 생각하니 사용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사업 정리 후 남은 물품을 중고 시장에 내다 팔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돈을 모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언뜻 계산해도 내가 1년 동안 사업하느라 허비한 돈은 수년 치 생활비에 달한다. 은퇴 후 가구주와 배우자 적정 생활비 수준으로 따지면 4∼5년 치에 이른다. 한번 무너지면 재기가 쉽지 않은 줄도 모르고 헛된 욕심만 부렸다. 퇴직자에게 퇴직금은 노후생활을 위한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 결코, 허투루 쓰지 않으시길 바란다.

해마다 2월에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하는 창업 지원사업 공모전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기관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지원사업이 많다. 창업을 생각한다면 오롯이 내 돈만 사용하기보다 지원을 받도록 노력해 보자. 부담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더욱이 하려는 사업이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면 전문가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니 자신감도 생긴다. 나 역시 같은 이유에서 사업 실패 후 정부 지원사업에 도전한 바 있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한번 사업을 해볼 참이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바꿨다. 사업계획서 양식에 맞춰 내용을 채우다 보니 나의 계획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내가 하려 했던 사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허술했고 가격도 지나치게 높아 경쟁력이 전혀 없었다.

창업은 분명 퇴직자에게 있어 구미 당기는 선택지이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쫓기듯 회사를 떠나 번번이 막히는 벽 앞에서 무리한 창업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과정을 주변 퇴직자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당장 필요 때문에 또는 남들을 의식하느라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큰 탓일 듯하다. 그럴수록 차분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허술한 장비로 뛰어넘기에 세상의 벽은 너무도 높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