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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규인]아이를 보내고 싶은 운동부를 만드는 방법

입력 | 2024-01-10 23:42:00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특별반보다 야구부에서 먼저 도쿄 6대학 합격자가 나올 거다.”

일본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에, 한국으로 치면 SKY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별반이 생기자 이 학교 사사키 히로시 야구부 감독(49)은 이렇게 말했다.

2021년 겨울 이 학교 야구부 숙소 앞에 플래카드 석 장이 붙었다. 왼쪽은 야구부 선배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오른쪽은 기쿠치 유세이(33·토론토)의 MLB 진출 축하 플래카드였다. 그리고 가운데 플래카드에는 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오마키 마사토(23)의 이름 앞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축 합격 도쿄대학.”

오마키가 도쿄대 진학을 목표로 삼은 건 이 학교 1학년 때였다. 사사키 감독은 해마다 신입 부원이 들어오면 모든 부원에게 ‘목표달성표’를 나눠준다. 오타니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그 만다라트 계획표다. 오타니가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는 걸 목표로 삼았듯, 오마키는 도쿄대 진학을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삼수 끝에 목표를 이뤘다.

사사키 감독은 “야구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야구를 잘하는 것만으로 고교 생활을 보내는 건 헛수고이고 아까운 시간 낭비”라며 “근육의 힘은 나이가 들면 떨어지지만 지식과 지혜는 평생 쓸 수 있다. 그래서 야구부원들의 학업 성적이 뒤처지지 않도록, 또 사람으로서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갖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사사키 감독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그래야 ‘우리 아들을 이 학교 야구부에 보내야겠다’는 학부모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며 “사람은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입구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출구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목표달성표를 강조한 것 역시 출구부터 보여줘야 입구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일본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사사키 린타로(19) 역시 이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린타로는 고교 3년간 홈런 140개를 날리면서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 그리고 미국 대학 진학을 ‘출구’로 선택했다. 그게 야구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더 큰 기회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린타로의 아버지가 바로 사사키 감독이다.

대한체육회의 ‘은퇴 운동선수 실태조사’ 최신판(2019년)에 따르면 운동선수는 평균 23.6세에 은퇴하며 41.9%가 실업 상태다. 일을 하고 있는 은퇴 선수 중에도 46.8%가 한 달에 200만 원을 못 번다. ‘출구’가 이런 상태인데도 한국 체육계는 중학생은 평균 성적의 40%, 고등학생은 30% 이상을 받아야 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학생 선수 최저학력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학교 운동부원은 ‘선수 학생’이 아니라 ‘학생 선수’라고 부른다. 선수보다 학생이 앞에 온다. 체육계가 이 사실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한국에는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운동부만 늘어나지 않을까.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