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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日軍 문서로도 확인된 간토대학살, 더는 묻을 수 없다

입력 | 2023-12-26 23:48:00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설명은 한결같다. 2017년 아베 정부도, 현 기시다 정부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언제까지 묻어둘 수 있을까. 당시 조선인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는 구체적 내용이 담긴 일본군의 보고서가 25일 공개됐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소장된 ‘간토지방 지진 관계 업무 상보’에는 지진 발생 사흘 뒤 사이타마현에서 40여 명의 조선인이 “살기를 띤 군중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적혀 있다. 이 지역의 병무 담당 기관이 같은 해 12월 육군성에 보낸 것이다. 당시 일본군은 지진 피해 지역의 모든 부대에 보고를 지시했던 만큼 다른 지역에서 올린 보고서가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100년 전에 일본 정부가 간토대학살에 대해 인지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뚜렷한 물증이다.

▷있는 사실을 부인하려다 보면 말이 꼬이기 마련이다. 지난달 일본 참의원에서는 국립공문서관에 보관 중인 1924년 각의 문건이 공개됐다. “대지진 당시 조선인 범행의 풍설(소문)을 믿은 결과 살상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한 특사를 논의하는 내용으로, 일본 내각이 학살을 알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그런데 ‘이 문서가 정부 내 문서인가’를 묻는 질의에 관방장관은 “공문서관은 독립행정법인”이라는 등 동문서답을 내놓으며 답을 피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회의 회의록에 해당하는 문서조차 공식 문서로 인정하길 꺼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요즘도 일본에서는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인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엔 ‘조센진(조선인)을 죽이자’는 구호가 등장했고, 34명이 숨진 2019년 교토 애니메이션센터 화재 때는 ‘방화는 한국인의 습성’이라는 글이 포털사이트에 올라왔다. 미국 법학자 브라이언 레빈은 편견과 선입견이 차별, 폭력을 거쳐 집단학살로 발전하는 현상을 ‘혐오의 피라미드’라고 표현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또 다른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 정부 역시 1950년대 초 이후 간토대학살 피해자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상하이 임시정부가 집계한 한국인 희생자는 6661명인데,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더 늦기 전에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와 공동조사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사를 덮은 채 이뤄지는 한일관계 개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