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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쓴소리 못하면 세 번째 비대위에 민심 외면 [광화문에서/박훈상]

입력 | 2023-12-15 23:42:00

박훈상 정치부 차장


“곧 대통령실이 ‘액션’을 취할 것 같은데….”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하기 이틀 전 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예측했다. 그날 친윤(친윤석열) 초선 의원 10여 명이 국민의힘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김 전 대표 사퇴를 주장하는 비주류 중진을 “X맨” “퇴출 대상” “자살특공대” 등으로 몰아세우며 ‘집단 린치’를 가할 때였다. 당내에선 친윤 초선들이 ‘김기현 호위무사’를 자처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를 본 의원은 “용산(대통령실)에서 ‘김기현한테 당을 완전히 빼앗겼구나’ 생각하겠다”며 “대통령실에서 재밌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틀 뒤 김 전 대표는 사퇴했다. 김 전 대표 측에선 “용산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 전 대표가 3·8 전당대회에서 ‘윤심’(윤 대통령의 마음)을 등에 업고 과반 승리로 당선됐고, 대통령실 의지로 물러났다는 취지다. 당과 대통령실 간 수직적 당정 관계가 배경에 깔려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표 사퇴로 당내에선 “수직적 당정관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했다. 한 중진 의원은 “나무가 연이어 뽑혀 나갔다. 이제 토양을 바꿔야지 새 나무만 심는다고 되겠느냐”고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에게 누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할 것이냐고 묻자 나온 답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1년 7개월 만에 이준석 전 대표에 이어 김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게 됐다. 정부 출범 후 이어지는 ‘비상 상황’ 판부터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

사퇴 뒤 처음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비대위원장을 뽑을 때도 당정관계 재정립을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15일 국민의힘 비공개 의총에서 김웅 의원은 “당이 용산 2중대 역할을 해서 지지를 못 받고 있다”며 “‘윤석열 아바타’ 비대위원장이 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병수 의원은 “대통령이 전능한 분이 아니다. 실수나 잘못되는 길이 있으면 설득하고, 안 되면 과감하게 할 말 하는 비대위원장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할 말 하는 리더십’ 배경엔 ‘수도권 위기론’을 촉발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17.15%포인트 격차의 참패가 깔려 있다. 윤 대통령은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 전 구청장을 3개월 만에 사면 복권 시켰다. 당 지도부는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무공천 한다는 당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시그널’에 김 전 구청장을 재출마시켰다.

여당은 지난해 대선 승리에 이어 지방선거를 압승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 ‘정권 안정론’과 ‘정권 견제론’ 구도로 치러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비대위 성공에 정권의 명운이 달려 있다. 윤 권한대행은 수직적 당정 관계 지적에 대해 “실제로는 수직 관계라기보다는 소통이 원활하고, 일방적으로 의사 전달이 되고 그런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국민들 눈에 그렇게 비친다면 그런 부분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보는 것이 민심 아닌가. 비대위원장 인선이 국민 인식을 바꿀 시작점이 돼야 한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