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였을까?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떠난 길에 엄마의 부고가 들려오면 어쩌지?’ 하는 근심이 머릿속에서 돌연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 엄마 나이 42세에 태어난 늦둥이가 벌써 48세가 됐으니 엄마 나이도 벌써 아흔이다. 60대로, 70대로, 80대로 계속 머무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워낙에 바지런하고 운동에도 열심이신 분이라 엄마의 끝은 오랫동안 실감의 영역이 아니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검색창에 어르신 보행기라고 치니 수십 종의 모델이 득달같이 쏟아져 나왔다. 적당한 것으로 주문을 했고 며칠 전 도착한 보행기를 오늘 아침 엄마에게 갖다 드렸다. 몇 번에 걸쳐 핸들 높이를 조정한 보행기를 이리저리 끌어본 엄마가 말했다. 쓰겄다, 고맙다. 형과 누나들에게 인증샷을 보내기 위해 보행기 시트에 앉은 엄마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눈에 띄게 늙어버린 노모가 그 안에 있었다. 사진만 봤다 하면 엄지와 검지를 벌려 확대하는 버릇이 있는 나인데 그러지 않았다. 엄마 집을 나와 며칠을 보내는 동안 엄마와 함께 찍은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뿌연 이미지로 자주 떠올랐다. 하굣길에 마중 나온 엄마 곁에 찰싹 붙어 신나게 걷고 있는 모습. 나는 어렸고 엄마는 젊었다. 엄마는 종종 말한다. “인제 다 됐지 뭐….”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곳도 많아진다. 누리고 경험한 수많은 공간에 더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세월. 살면서 누구나 겪는 그 점멸의 시간이 길지 않기를,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