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상자해파리’ 연구 뇌 구조 없는 무척추동물 과거에 반복된 경험으로 장애물 발견하거나 피해
뇌 구조가 없어도 반복된 자극으로부터 학습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상자해파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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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나 생쥐 등이 가진 뇌가 없는 해파리도 과거의 경험을 학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보를 처리하는 중심기관인 뇌가 없어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발견하거나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고등 학습 능력이 오직 뇌에 의존한다는 그동안의 상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평가했다.
얀 비엘렉키 독일 키엘대 연구팀은 해파리가 이들의 서식지에서 장애물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러한 학습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를 22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해파리는 대표적인 무척추동물이다. 신경세포가 몸체에 균일하게 분포된 산만신경계로 구성됐다. 뇌에 해당하는 구조는 따로 없다. 그 대신 삿갓같이 생긴 신경 부위에 신경세포가 밀집된 신경집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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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해파리가 경험을 통해 장애물을 피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실시했다. 상자해파리의 실제 서식지를 재현하기 위해 겉면에 회색과 흰색 장애물이 있는 둥근 모양의 수조를 꾸몄다. 회색 줄무늬는 탁한 물속에서 보이는 나무뿌리의 모습을 모방했다.
7분 30초간 이뤄진 관찰에서 해파리들은 처음에는 장애물에 곧잘 부딪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물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관찰 초기보다 50% 정도 거리를 더 벌렸다. 관찰이 끝나갈 무렵 해파리가 장애물에 충돌하는 횟수는 처음 수조에 들어갔을 때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해파리가 시각적이고 기계적인 자극을 통해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확실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상자해파리가 어떻게 학습 활동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로팔리아’라고 불리는 시각 감각 기관을 분리했다. 분석 결과 이 기관은 해파리가 장애물을 피하는 데 성공할 때마다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신호를 생성했다. 전류가 흐르도록 처리한 회색 막대를 로팔리아에 갖다 댈 때마다 이 기관에선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생체신호가 지속적으로 분비됐다. 상자해파리는 장애물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하기 위해 시각적인 자극과 기계적인 자극을 결합한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비엘렉키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선 상자해파리가 감각을 통해 얻는 자극을 통한 연상학습을 통해 장애물을 피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뇌를 사용하지 않는 생물의 새로운 학습 방법을 밝혀낸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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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