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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미국 철강산업에 빅 이벤트! US스틸 인수전[딥다이브]

입력 | 2023-08-26 08:00:00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122년 역사의 철강회사 US스틸(US Steel)이 회사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역시 미국 철강기업인 176년 역사의 클리블랜드 클리프스(Cleveland-Cliffs)가 이 인수전에 뛰었다는 소식인데요.

철강산업은 지루하고 뻔하다고요? 특히 미국 철강산업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별 볼 일 없어졌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어지는 중입니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미국 철강산업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재편 중인 미국 철강산업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US스틸 용광로 작업 모습.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122년 역사의 철강기업 US스틸이 매물로 나왔다. US스틸 홈페이지

*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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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철강회사가 팔린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와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US스틸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인데요. 1901년 존 피어폰트 모건이 카네기의 철강회사 ‘카네기스틸’을 포함한 9개 철강회사를 인수해 합병시켜 만든 게 바로 US스틸입니다.

그 시절 US스틸은 정말이지 엄청났습니다.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자(US스틸 자본금 14억 달러), 당시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이던 미국 철강산업의 3분의 2를 지배하는 회사였는데요. 1901년의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경탄합니다. “미국은 큰 걸 좋아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켄터키 매머드 동굴, 옐로스톤에 이어 이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기업까지 갖게 됐다.”

US스틸은 ‘괴물 철강 트러스트’로 불렸죠. 너무 큰 나머지, 설립 10년 뒤인 1911년 미국 연방정부가 독점금지 소송을 걸어 US스틸을 해체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는데요(하지만 정부가 패소).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까지. 한 시대를 지배했던 기업입니다.

US스틸은 미국 철강산업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던 시기에 탄생했다. 이후 1970년대 석유파동 이전까지 꽤 오랜 기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US스틸 홈페이지

그리고 지난 13일 나온 소식. US스틸이 회사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122년 역사의 기업이 어디론가 흡수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인데요.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US스틸을 72억5000만 달러(약 9조6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 제안은 일단 US스틸이 거부했고요. 미국의 철강 가공 기업인 에스마크(Esmark)는 US스틸을 78억 달러에 인수하겠단 제안을 내놨다가 23일 철회했습니다. 동시에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 2위 철강 기업 아르셀로미탈이 US스틸 인수를 검토 중이란 보도도 나옵니다.

제안된 인수금액만 봐서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딜처럼 보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CNN은 ‘한때 미국 경제력의 상징이었던 US스틸이 이제 특가 상자(bargain bin)에 매물로 나왔다’고 표현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US스틸은 지난해 기준 철강업계 세계 27위(생산량 1449만t)에 그칩니다. 세계 1위인 중국의 바오우그룹(1억3184만t)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죠. 포스코(7위)나 현대제철(18위)과 비교해도 한참 뒤지고요.

2022년 세계 철강 생산량 순위. US스틸은 27위에 그친다. 자료: 세계철강협회

미국 철강산업이 주도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쇠퇴하기 시작한 게 이미 50년 전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완전히 세계시장을 장악했고요. US스틸은 철강업계를 뒤흔든 구조조정 물결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 높은 외국산 철강회사와 치열하게 싸우며 버텨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번 US스틸 인수전은 관심을 끕니다.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맞물려있기 때문이죠.


미국산 전기차엔 미국산 강철을?!
초점을 잠시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줄여서 클리프스)로 옮겨볼까요. 클리프스는 US스틸로부터 인수 제안을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데요. 특히 미국 철강노조가 “US스틸을 인수할 회사는 클리프스밖에 없다. 클리프스 외에는 그 어디도 지지하지 않겠다”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US스틸은 회사를 매각할 때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하죠. US스틸이 공식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결국 이번 인수전이 클리프스 쪽으로 기울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21일 블룸버그TV와 인터뷰하는 로렌코 곤칼베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CEO. 클리프스가 US스틸을 인수하는 게 과연 기업가치 면에서 긍정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곤칼베스가 아주 확고한 인수 의지를 갖고 있음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블룸버그TV 화면 캡처

176년 전 철광석 캐는 광업회사로 출발했던 클리프스는 연이은 인수합병을 통해 지금은 US스틸을 능가하는 북미 2위의 철강회사가 됐습니다(세계 22위). 그리고 그 성장의 중심엔 브라질 빈민가 출신의 자수성가 CEO 로렌코 곤칼베스가 있는데요. 그는 거침없고 저돌적인 캐릭터로 유명합니다(별명이 ‘철강의 일론 머스크’). 특히 2018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 “당신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재앙이다. 부모님을 부끄럽게 한다. 자살해야 한다”고 무지막지한 폭언을 퍼부어 더 유명해졌죠(바로 1년 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에게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해서 또 화제가 됨).

곤칼베스가 CEO에 올랐던 2014년만 해도 클리프스는 심각한 적자 상태였는데요. 사업을 구조조정하며 재건해나가던 클리프스에 기회에 찾아온 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산 철강 가격이 뛰기 시작합니다. 곤칼베스는 이를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으로 봤고요. 이후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해 굵직한 미국 내 M&A를 잇달아 성공시키면서(2020년 AK스틸과 아르셀로미탈 미국 법인 인수) 철광석 채굴부터 자동차용 강판 제조까지 다 할 수 있는 미국 철강산업의 강자로 급부상합니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의 자동차용 강철 제품 제조 공정.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홈페이지

이러한 전략은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죠. 2021년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내 철강 가격이 t당 거의 2000달러까지 치솟은 겁니다(이전 10년 평균 가격은 약 600달러). 지금은 가격이 800달러대이긴 하지만 여전히 과거보다 상당히 높습니다. 미국 경제의 호황 국면이 꽤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M&A 과정에서 노조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던 곤칼베스 CEO는 지난해엔 기본급을 20%나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노조로선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야심가 곤칼베스 CEO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데요. 자금 조달이나 독점 이슈 면에서 무리일 수 있는데도 US스틸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는 US스틸이 거부 의사를 밝힌 뒤에도 “US스틸 인수를 통해 세계 10대 철강회사 중 유일한 미국 기업을 탄생시키겠다”며 인수제안 사실을 공개하고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데요(두 회사가 합치면 조강생산능력 3100만t으로 10위권).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의 자동차용 철강 시장에서 해외 업체와 경쟁하려면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미국의 애국심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한국산 철강, 일본산 철강과 경쟁합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 자동차 기업은 일본산 강철을, 한국 자동차 기업은 한국산 강철을 좋아합니다. 디트로이트 구성원인 자동차 회사 중 한 곳도 유럽에서 강철을 수입해왔습니다. 싸움은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합병 이후에도 매우 작습니다.”(CNBC 인터뷰)


합병하면 독점 아닌가?  

US스틸이 생산하는 고강도 강철. US스틸 홈페이지

사실 예전 같으면 미국 철강업계 2위 업체가 3위 기업을 인수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당연히 걸릴 테니까요. 실제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미국 철광석 매장량의 100%를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자동차용 강판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이라고 전기차 모터에 꼭 필요해서 최근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제품이 있는데요. 이 역시 미국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가 될 겁니다.

아무리 봐도 합병 시 ‘국내 독점’ 위험이 커진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고객인 자동차 업계는 벌써부터 강판 가격 인상을 걱정하죠. 만약 합병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자동차 업계가 ‘자동차용 철강 공급에 경쟁이 필요하다’라며 워싱턴DC로 행진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데요(미국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 발언).

그런데 말이죠. 어쩌면 지금은 반독점 판단에 있어서 예전과는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철강시장 관점에서 보면 미국 1, 2위 업체라고 해도 세계 선두권 기업과는 워낙 격차가 크고요.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제조업 부활(=일자리의 부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곤칼베스 CEO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게다가 재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노조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악시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 (미국) 연방 정부는 잠재적인 ‘괴물 철강 트러스트’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강력한 국내 철강 제조업체를 구축하는 데 훨씬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딜이 다들 독점 규제 이슈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로렌코(곤칼베스 CEO는 업계에서 퍼스트네임으로 불림)는 결국 뭔가를 얻게 될 것”이란 기대 섞인 반응이 함께 나오는데요.

일단 US스틸 주가는 인수전 소식이 나온 뒤 30% 넘게 급등했습니다. 클리프스가 제시한 인수 가격(주당 35달러)에 근접했는데요. FT 칼럼은 이를 두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투자자들은 미국이 여전히 큰 것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US스틸의 흥망성쇠를 보다 보니, 미국 산업화의 역사까지 함께 들여다 본 기분인데요. 과연 이 길고 긴 US스틸 역사의 결말은 무엇이 될지가 궁금해집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국 산업화의 상징 US스틸이 122년 만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지만 이젠 중국, 인도, 일본, 한국 기업에 밀려 세계 철강업계 27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곳은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입니다. ‘철강계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곤칼베스 CEO가 “세계 10위의 미국 철강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철강노조의 지지까지 이미 얻어냈습니다.

-문제는 두 회사의 합병이 독점금지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대단히 커 보인다는 점인데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있는 터라,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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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