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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오씨, 용인 라씨, 태국 태씨…. 낯선 느낌의 이들 성(姓)과 본(本)은 귀화한 외국인들이 새로 만든 것이다. 청양 오씨는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케냐 출신 오주한 씨가 만들었다. 오주한은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용인 라씨 역시 2012년부터 한국 프로농구에서 뛰는 미국 출신 라건아가 만들었다.
▷양주 박씨의 시조인 박화연 씨도 같은 경우다. 베트남 출신으로 2017년 한국인 남편 박규정 씨와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아내 박 씨는 2021년 국적을 취득하면서 ‘양주 박씨’를 만들었다. 아들은 남편 성본을 물려받아 밀양 박씨였는데 이 부부가 아들의 성본을 양주 박씨로 바꿔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성본 변경 허가 청구서에 “베트남 이주민의 한국인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도 이겨내고 싶다”고 썼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부부 협의 아래 엄마 성본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아빠 성본을 따랐다가 바꾸는 것은 이혼, 사별 등 제한적 경우에만 허용됐다. 법원은 최근 이 관례를 깨고 박 씨 부부의 청구를 허가했다. 가족 사이의 정서적 통합에 도움을 주고,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상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주 여성의 자녀가 엄마의 성본으로 변경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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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건너와 가락국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후의 후손이 만든 성본이 양천, 김해 허씨라고 한다. 이들 허씨가 인도계라면 양주 박씨는 베트남계가 된다. 이들의 성본은 부계가 아닌 모계에서 출발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편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저출산이 문제가 되면서 이민에 대해 문호를 활짝 여는 나라가 늘고 있다.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아직은 이민에 대해 문을 활짝 열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개방성을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