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 펴낸 ‘섬진강 시인’ 김용택 어릴적 빼곤 강과 가까이 못지내다, 코로나에 강연 못다니며 매일 산책 2년간 쓴 500편중 55편 골라담아… “첫날처럼 생각하면 지루하지 않아”
김용택 시인이 촬영한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느티나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모습(위 사진부터). 나무 뒤로 섬진강이 흐른다. 김 시인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는 시골 마을의 풍경을 풍요롭게 만든다”며 “느티나무 아래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고 했다. 김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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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75)은 요즘 매일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를 걷는다.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나무 그늘에 숨어 흐르는 땀을 식힌다. 나무 곁에 서면 그네 타고, 씨름하고, 낮잠 자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겨 세상의 이치를 다 알게 된 것처럼 우쭐하다가도, 평생 자신을 지켜본 나무 아래에서 그는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김 시인은 나무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이제 생각하니/나는 작고 못났다/그런데다가/성질도 못됐다/나무야/근데 내가 인자/어찌하면 좋을까”(‘나무에게’에서)
김 시인이 14번째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문학동네·사진)을 최근 펴냈다. 그가 시집을 낸 건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2021년·문학과지성사) 이후 2년 만이다. 2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외부 강연을 못 다녀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했다. 2년 동안 쓴 글이 500편인데 이 중 55편을 골라 신작에 담았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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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임실 김용택 시인 문학관’ 앞에 선 김용택 시인. 김 시인은 “문학관 마당엔 화려한 꽃보단 키가 작고 소박한 꽃을 키운다”며 “코로나19가 완화된 덕에 요즘은 문학관에서 종종 글쓰기 수업을 한다”고 했다. 김 시인 제공
“섬진강 변을 이렇게 자주 걸은 적이 어릴 적 빼고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코로나19가 저를 섬진강과 다시 가깝게 만든 거죠.”
“자연은 정체되지 않아요. 꽃은 피고 지고, 바람은 불다가도 멈추고, 새는 나무에 앉아 있다가도 곧 날아가죠. 시집 제목을 ‘모두가 첫날처럼’이라 지은 것도 독자가 자연처럼 모든 걸 새롭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을 첫날처럼 생각하면 삶이 지루하지 않거든요.”
그는 나비를 바라보며 시인의 삶도 성찰한다. “나비는 날개를 펼 때/권력을 이용하지 않는다”(‘시인’에서)라고 생각하고, “나비는 시에서 태어났다/말로 날개를 단 것들의 괴로움을 알고 있는 그 나비는/다시는 시에 앉지 않는다”(‘다시는, 다시는’에서)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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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은 낮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옛집을 개조한 진메마을 ‘임실 김용택 시인 문학관’에 머물며 글을 쓰고, 밤엔 문학관 뒤편 자택에서 잔다. 고향을 떠날 계획이 없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40년 가까이 학교 선생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섬진강이 저의 선생이더라고요. 전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글 쓰며 늙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이에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