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서적, PDF파일로 복제-유포 출판사 10년새 20곳서 3곳 남아 출판사 대표 “오죽하면 고소했겠나” 학생 “매학기 책값 수십만원 부담돼”
24일 오후 전국 법학전문대학원에 전공 서적을 납품하는 A출판사 백현관 대표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무실에서 안 팔려 반품된 책들을 앞에 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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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법학 교재 70만 원어치가 단돈 5000원에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10년 넘게 국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교재를 납품해 온 A출판사 백현관 대표(56)는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 쌓인 책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24일 기자가 찾은 사무실에선 직원 10여 명이 디자인과 검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백 대표는 “올 1분기(1∼3월) 매출이 급격히 줄어 교재 연구 직원 5명을 줄였다”고 했다.
최근 대학가에서 커뮤니티와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전공 서적 불법 복제 및 공유가 일상화되면서 출판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로스쿨의 경우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 고가의 전공 서적이 전자문서(PDF) 파일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어 ‘예비 법조인들이 불법을 공공연하게 저지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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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 서적 출판사 20곳에서 3곳으로 줄어”
A출판사는 변호사시험 모의고사를 출제하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전협)에 매년 수천만 원을 내고 복제이용권을 사들여 책을 만들었다.백 대표에 따르면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이 치러질 당시만 해도 전국 25개 로스쿨에 전공 서적을 납품하는 출판사가 20곳이 넘었다고 한다. A출판사 역시 매년 10억 원 안팎의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PDF 파일로 만든 불법 복제물이 대량 유포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게 됐다. 백 대표는 “한 번이라도 복제되면 이후 무제한 복제돼 유통되기 때문에 사실상 해당 책의 수명은 끝난다”며 “20곳 넘던 전공서적 출판사가 우리를 포함해 3곳밖에 안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올 1분기 매출은 1억9623만 원으로 2년 전보다 40%가량 줄었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1분기 매출이 매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회사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백 대표는 “지난해에는 대출이라도 받아서 겨우 버텼는데 올해는 밀린 대금 처리조차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24일 한 로스쿨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인한 결과, PDF 불법 복제물을 판매하거나 구매한다는 글이 30건 넘게 올라와 있었다. 불법성을 감안한 듯 초성만 따서 올린 게시물이 많았다. 거래를 희망하는 사람이 비밀댓글을 달면, 익명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내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백 대표는 지난달 30일부터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인한 판매자와 구매자 등 50여 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 9곳에 고소했다. 그는 “오죽하면 전공 서적 이용자인 로스쿨 학생들을 고소까지 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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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학기 수십만 원 책값 부담”
로스쿨생들 사이에선 “불법이라는 건 알지만 전부 새 책을 사려면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로스쿨에 매년 1000만∼2000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온라인 강의나 학원비까지 들어가는데 추가로 수십만 원의 책값까지 들이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올해 로스쿨을 졸업한 A 씨(26)는 “전공 서적을 비싸게 구입해도 매년 판례가 달라지다 보니 이듬해 다시 새 책을 구입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암묵적으로 불법 복제물을 공유하는 관행이 생겼다. 저도 매 학기 50만 원에 이르는 교재 비용을 아끼려고 PDF 파일을 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법 복제물을 사거나 파는 건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한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불법적 관행이 유지될 경우 저작물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