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콘서트 필수품 응원봉 5만원 육박… “티켓까지 사려면 알바해야”

입력 | 2023-04-22 03:00:00

[토요기획]장삿속 과도한 아이돌 응원봉 “콘서트 관람 때 없으면 소외감”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팬들, 중고시장에선 10만원에 거래도
응원봉 가격 5년 만에 2.7배로 올라… 기획사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
해외에선 굿즈 사업에 부정적… 음악-공연의 질 향상에 집중해야




《응원봉 5만원… 허리 휘는 ‘아이돌 굿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방역 지침이 해제되면서 오프라인 콘서트 개최가 느는 가운데 응원봉 등 콘서트 굿즈 판매도 성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업체들이 순수한 팬심을 악용해 응원봉 가격을 과도하게 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5,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진행된 트와이스 콘서트 무대 장면. 객석을 채운 팬들의 손엔 푸른색 불빛이 켜진 응원봉이 들려 있다. 아래 사진은 2021년 12월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NCT 127’ 콘서트에 참석한 팬이 응원봉을 들고 있는 모습. JYP엔터테인먼트 제공·팬 제공




“비출수록, 빠져들어, 트와이스!”

15일 오후 6시경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콘서트가 시작되자 객석을 가득 메운 팬 1만여 명은 노래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콘서트장을 메운 팬 중 절반가량의 손에는 길이 25cm쯤 되는 사탕 모양 응원봉이 들려 있었다.

트와이스 멤버 나연의 솔로 무대가 시작되자 팬들이 들고 있던 응원봉이 나연의 상징색인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응원봉 불빛이 물결치듯 켜지는 ‘응원봉 파도타기’도 진행됐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응원봉을 든 팬들이 불빛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주최 측에서 원격으로 콘서트장 내에 있는 응원봉을 제어했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 참가를 위해 4만9000원을 주고 응원봉을 구입했다는 이예지 양(17)은 “예전에 콘서트에 들고 갔던 응원봉이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응원봉만 원격 제어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새로 구입했다”며 “티켓과 응원봉 가격을 합쳐 20만 원 넘게 들었는데, 부모님이 콘서트 가는 걸 안 좋아해 몰래 아르바이트해서 비용을 마련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방역 지침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오프라인 대형 콘서트가 곳곳에서 다시 열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부쩍 비싸진 응원봉 등 굿즈 가격을 놓고 일각에선 ‘지나친 상술’이란 지적이 나온다.

● 웃돈 붙은 응원봉, 하루 대여에 3만 원

열혈팬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이돌 그룹 콘서트를 예매한 후 최신 응원봉을 구입하는 걸 공식으로 여긴다. 실제로 아이돌 그룹 ‘프로미스나인’의 경우 지난해 9월 공식 홈페이지에서 응원봉 구매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준비된 물량이 바닥났다.

경쟁률이 치열한 경우 웃돈도 붙는다. 온라인 중고마켓에선 정가 3만5000원인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의 응원봉이 콘서트가 임박한 시점에 약 1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구입하기에는 비싸 하루만 빌리기도 하지만 대여 요금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9월 아이돌 그룹 ‘NCT 드림’의 콘서트를 위해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3만 원을 주고 하루 동안 응원봉을 대여했다는 이모 양(18)은 “콘서트를 제대로 즐기려면 응원봉이 필요했다. 그런데 웃돈이 붙어 사려면 8만 원이 들더라”면서 “결국 하루 빌리는 가격치곤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빌렸다”고 했다.

최신 응원봉을 사거나 빌리지 못한 팬들 중에는 콘서트장에서 소외감을 느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학원생 차모 씨(27)는 “구형 응원봉을 가져갔는데 내 응원봉만 원격 조종이 안 되더라. 은근히 소외감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최모 씨(25)도 “정가에 응원봉을 구하려다가 실패해 다이소에서 파는 형광막대를 갖고 콘서트에 갔는데 주변 시선이 신경 쓰였다”고 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NCT 드림 콘서트에서 응원봉과 유사한 색깔의 먼지떨이를 들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응원봉 가격 5년 새 두 배 이상으로

아이돌 콘서트에서 응원봉이 필수 굿즈가 된 건 2008년 무렵부터다. 1990년대 ‘H.O.T.’나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 팬들이 공연장에서 특정 색깔의 풍선을 흔들며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는데, 이후 일회용 형광막대로 넘어갔다가 응원봉으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YG엔터테인먼트에서 ‘세븐’과 아이돌 그룹 ‘빅뱅’의 공식 응원봉을 처음 판매하면서 다른 아이돌 그룹도 공식 응원봉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반에 1만 원 정도였던 응원봉 가격은 2017년 무렵 주최 측에서 원격으로 응원봉을 제어하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가격이 2만, 3만 원대로 한 차례 올랐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다시 올라 최근에는 4만, 5만 원 가량이 됐다.

고가의 응원봉을 보는 팬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중학생 때부터 트와이스를 좋아했다는 박나연 씨(23)은 “2017년 응원봉을 1만8000원에 샀는데 올해는 4만9000원으로 2.7배가 됐다. 콘서트에서 흔들 때는 좋았지만 예전 응원봉은 쓸 일이 없어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고 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콘서트에 한 번 갈 때 10만∼15만 원을 썼는데 최근 티켓과 응원봉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지금은 20만∼25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서모 양(18)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를 관람하는 데 총 70만 원을 썼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는 교통비에다 티켓과 응원봉 가격에 모두 웃돈이 붙어 각각 35만 원, 10만 원이 들었다”며 “용돈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집 근처 고깃집에서 일주일에 2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마련했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응원봉을 장식품 포함 6만 원에 출시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선 “멤버도 같이 주는 게 아닌 이상 이런 가격일 수 있느냐”는 내용의 트윗이 41만 회 조회됐다.

●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올리는 기획사들

기획사들은 대부분 응원봉 가격을 올리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이브, JYP 등 일부 기획사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반도체 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응원봉 가격을 올린다”고 공지하는 정도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원봉을 구입하면서도 답답해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자발적으로 모여 팬클럽을 만들고 회장을 뽑아 대표 격으로 팬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 그룹의 활동 범위가 글로벌화되고 기획사가 팬클럽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팬들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할 창구도 사라졌다. 직장인 김지수 씨(28)는 “굿즈숍에 소비자 불만 접수 창구가 있지만 응원봉 불량이나 배송 지연 등의 사안에만 대응한다. 치솟는 가격에 대해선 의견을 전달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불평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팬들의 공동 대응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일부 팬이 트위터 등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했다.

아이돌 그룹 팬들 사이에선 ‘가왕’ 조용필 사례도 회자된다. 조용필 콘서트 기획사는 최근 응원봉을 관객들에게 무료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응원봉을 포함한 티켓 가격은 9만9000∼15만4000원으로 사은품 없는 아이돌 그룹 티켓 가격보다 오히려 저렴한 수준이었다. 이를 두고 SNS에선 “팬들을 돈으로 안 보는 진짜 가수”란 평가가 나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응원봉 가격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돌 굿즈 관련 업무를 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응원봉 가격에는 수급난을 겪은 반도체 비용을 포함한 제조원가 외에도 제어 기술 개발비, 연동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개발비 등 제반 비용이 포함된다”며 “관련 비용이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올라 전반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추세”라고 했다.

● “팬심 과도한 이용은 K팝 이미지에 악영향”

전문가들은 응원봉 등 굿즈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이 K팝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응원봉이 소속감을 주면서 동시에 공연장에서 공연을 충분히 즐기기 위한 필수품이란 생각이 어느새 자리 잡았다. 그렇다 보니 성능이 좀 떨어지거나 가격이 비싸더라도 사게 된다”고 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K팝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굿즈 사업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데, 해외에선 음악이 아닌 굿즈로 수익을 내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며 “K팝의 확장성을 위해서라도 과도한 마케팅은 자제하고 음악과 공연의 질을 올리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