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까지 아시아문화박물관 월북 후 국립영화 음악감독 활동 北 독재체제 비판하다 해외 망명 고려인 힘겨운 삶 음악으로 위로
광주 출신 민족음악가 정추 선생. 2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관람객이 정추 선생이 작곡한 대표 노래 7곡의 악보를 살펴보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민족음악가 정추 선생(1923∼2013)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고향 광주에서 개최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월 28일까지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정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 ‘나의 음악, 나의 조국’을 연다고 27일 밝혔다. 전시장은 정 선생 작고 이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국가기록원 등에 기증된 기록물 300여 점으로 꾸며졌다.
전시장에는 정 선생이 작곡한 ‘내 조국’ 등 대표적 노래 7곡의 악보가 눈길을 끈다. 이 공간에서는 정 선생 노래를 감상하고 전자피아노로 연주를 해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내 마음은 언제나 조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라는 글귀 아래 포토존이 꾸며져 있다.
외삼촌 정석호 씨는 1920년대 독일 베를린 슈테른 콘서바토리 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어린 시절 외삼촌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외할아버지가 세운 기생교육 기관인 권번에서 노래를 들었다.
큰형 정준채 씨는 북한 최초 컬러영화 ‘사도성 이야기’를 만든 감독이다. 막냇동생 정근 씨는 동요 ‘텔레비전’, ‘둥글게 둥글게’를 작곡했다. 고모부 김우진 씨는 최초 대중가요인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 씨와 함께 대한해협에 투신한 연극인이다.
그는 1938년 광주고보(현재 광주제일고)에서 일본 장교 배척 사건으로 퇴학을 당한 뒤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전시장에는 양정고보 졸업장 등이 있다. 이혜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는 “가계도 등은 정추 선생의 예술가 자질과 애국정신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말했다.
2부 ‘음악의 길을 나아가다’는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발자취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그는 1946년 큰형을 따라 월북한 뒤 평양 국립영화촬영소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평양외대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한 그는 1952년 국비장학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학했다.
3부 ‘음악인류학자로 열정을 불태우다’는 1959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이다. 북한의 탄압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망명한 그는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고려인 가요 채록 작업에 매진했다. 고려인 가요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힘겨운 삶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다. 그는 고려인 집단농장을 돌아다니며 구전으로 전해진 고려인 가요 가사 1068곡, 악보 500곡을 채록했다. 3부 전시장에는 음악인류학자의 길을 걸어온 선생에게 영향을 끼친 시조집 청구영언선 등이 있다.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선생은 한국에선 월북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선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했다는 까닭으로 잊힌 음악가”라며 “특별전은 평생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선생의 일생과 노력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관람은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