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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담합’ 조사까지 받는 은행, 정말 경쟁 안 하는 걸까?[김도형의 돈의 뒷면]

입력 | 2023-03-18 16:00:00


돈, 오카네, 머니. 세상 그 누가 돈에서 자유로울까요. 동전도 지폐도. 돈은 뒤집어서 봐도 돈일 뿐입니다. 그래도 돈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있습니다. 은행, 보험사, 카드사. 그리고 이들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가 돈의 행간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돈의 뒷면, 두 번째 이야기는 최근 대출금리 담합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까지 받게 된 은행들의 경쟁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은행의 과점 체제를 지적하고 경쟁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데요.

미리 두 줄 요약을 해보자면.

국내 은행들이 과점적인 시장 환경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은 금리 측면에서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 국내은행, 지난해 이자이익은 55조9000억 원
본격적인 은행 금리 경쟁 얘기에 앞서서 최근에 금융감독원이 정리한 국내은행들의 지난해 수익부터 살펴볼까요.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크게 높아진 지난해 국내은행들은 18조5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습니다.

2021년 16조9000억 원에 비해 1조6000억 원 늘어난 수치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늘어난 이자이익입니다.

자료: 금융감독원

지난해 국내은행들은 2021년 46조 원보다 21.6%, 9조9000억 원이 늘어난 55조9000억 원의 이자이익을 거뒀습니다.

이자수익을 올리는 자산 자체가 10.3% 늘어나는 양적인 성장에 순이자마진(NIM)이 1.45%에서 1.62%로 높아진 질적인 성장까지 함께 결과였습니다.

지난해 국내은행들은 유가증권 관련 손실, 수수료 이익 감소 등으로 비이자이익이 3조4000억 원에 그쳤습니다.

2021년 7조 원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인데요. 당기순이익 증가에는 이자이익이 큰 몫을 한 셈입니다.



● 높아진 이자이익에 “경쟁 시스템 강화” 질타
이처럼 역대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두면서 은행들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경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정부의 인·허가로 유지되는 과점 체제 속에서 은행들이 제대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이자장사로 편안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비상경제민생회의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02.15 대통령실사진기자단/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금리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출 이자로 큰 부담을 지게 됐는데 은행의 이익은 오히려 더 커지는 상황에 따른 반작용이겠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지적한 만큼 금융당국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후속 작업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를 출범시켰는데요.

TF에서는 △은행권 경쟁 촉진 △금리체계 개선 △보수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사회공헌활동 활성화 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과점’은 맞지만… “금리를 통한 가격경쟁 치열” 분석
윤 대통령의 지적과 금융위의 후속 조치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역시 은행권 경쟁 촉진인데요.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은행 등 5대 시중은행으로 대표되는 국내 은행들이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은행 간의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슈입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런데, 기존 은행들 간의 경쟁 구도는 어떤 수준인 것일까요.

은행들이 금리 측면에서 별로 경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전제가 맞아야 경쟁을 본격적으로 강화할 수가 있는 것인데요.

금리와 관련한 은행들의 경쟁 수준에 대한 분석은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에서 나온 ‘이슈노트(우리나라 은행의 예대금리차 변동요인 분석 및 시사점)’를 살펴보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합니다.

한국은행의 공식견해가 아니라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안정총괄팀과 은행분석팀 과장들의 개인의 견해라는 해설이 붙어 있는 자료인데요.

2010년 초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의 10년 넘는 기간 동안 국내 13개 일반은행 자료를 분석한 이 이슈노트의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1금융권) 가계 및 기업 대출시장은 5개 시중은행이 각 15~20%, 6개 지방은 행이 각 5% 내외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의 과점시장인 동시에, 금리를 통한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시장인 것으로 평가된다.

각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거의 유사한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모습을 보이며, 이는 과점시장의 주요 특징인 ‘치열한 경쟁, 전략적 행동’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가계 및 기업 대출시장에서 공통적이며, 특히 가계대출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국내 은행들이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세계 안에서 금리를 통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분석의 결론입니다.



● 10년간 1~2%포인트 오간 예대금리차, 은행간 편차는 적어
은행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금리 경쟁을 하는 모습은 이 이슈노트의 그래프 한 장에 잘 표현돼 있는데요.

10년 넘는 기간동안 5대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가 낮게는 1.0%포인트 전후에서 높게는 2.0%포인트 전후를 형성하면서 서로 비슷하게 동행하는 모습입니다.

자료: 한국은행

1.0%~2.0%를 오가는 은행 예대금리차는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확대되고 변동금리대출 혹은 저원가성예금의 비중이 높아질 경우 그 확대 정도가 더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5대 시중은행 외에도 다수의 지방은행과 외국계 은행 그리고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금리 측면에서 담합을 하기는 사실 쉽지 않은 구도일 수 있는 것인데요.

이슈노트는 은행들이 전략적인 금리 조정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결국 대출시장 내에서의 점유율 확보를 위한 경쟁의 결과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대출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진 은행은 예대금리차를 확대하고 점유율이 낮아진 은행은 점유율 회복을 위해 예대금리차를 축소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역시 은행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경쟁을 한다는 결론입니다.



● “가계대출 돈줄 조이면서 은행간 경쟁 요인 줄어”
2021년 이후에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상황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기준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대출자들의 변동금리대출 선택 비중이 늘어난 점 그리고 은행 간 가계대출 확대 경쟁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던 점을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요.

자료: 한국은행

금리 상승분이 빠르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변동금리대출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지난번 ‘돈의 뒷면’(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304/118168085/1)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금리 인상기에 예대금리차가 더 커지는 당연한 요인일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2021년 이후에 은행 간의 가계대출 확대 경쟁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대목인데요.

정부가 가계대출총량 관리에 나서면서 은행들이 서로 경쟁할 이유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가계대출의 가산금리가 상승했다는 분석입니다.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기에 가계대출 부실을 우려해 돈줄을 조였는데 이 때문에 은행들은 경쟁을 덜 하게 되고 결국 대출금리가 더 오르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 독점적 경쟁 시장… 은행 경쟁 강화 묘수 나올까
금융위가 꾸렸다는 TF가 최근에 내놓은 자료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주요 연구는 국내 은행산업은 주요국 대비 과점강도가 낮거나, 오히려 경쟁적 내지 독점적 경쟁시장에 가깝다고 분석.

현재 상태에서는 다양한 경쟁촉진 정책, 담합 등 경쟁저해 행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오히려 나은 방법이라는 견해도 있음.”은행들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은행업을 추가 인가하는 것에 대한 고려사항으로 달아놓은 설명인데요.

금융당국 역시 국내 은행들이 경쟁을 하지 않는 시장 환경에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보면서도 추가적인 경쟁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금융당국과 은행의 역할, 그리고 금리 문제는 단선적으로 볼 수 없는 이슈입니다.

2021년 이후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돈줄을 조이면서 은행들의 경쟁이 약화돼 대출금리가 올랐다고 해서 금융당국이 잘못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출자들은 결국 금리가 높아져야 대출의 규모를 줄이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예대마진만이 아니라 대출의 전체 규모와 건전성 문제 등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인데 사실 실제로 상승한 금리의 상당 부분은 은행도, 금융당국도 아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부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확보해야 부실에도 대비하고 정부의 금융 취약계층 지원 요구에도 화답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은행권 경쟁 확대’라는 수레바퀴는 구르고 있습니다.

은행들 사이에서 나름의 경쟁 환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고금리 시기에 과점적인 시장 환경에서 일반 기업에 비해 쉽게 수익을 올렸다는 점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은행들 스스로도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 ‘돈의 뒷면’에서 주로 참고한 한국은행의 이슈노트를 직접 살펴보고 싶은 독자분들은 이 주소(https://www.bok.or.kr/portal/bbs/P0002353/view.do?nttId=10073295&menuNo=200433&pageIndex=1)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