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민 KAIST 신임 창업원장 단독 인터뷰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무려 5개의 스타트업을 연쇄 창업한 ‘스타 교수’가 최근 KAIST의 신임 창업원장이 됐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일기 쓰듯 창업을 쉽게 잘 하셔서 놀랍다”는 배현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51)다.
13일 대전 유성구 KAIST 창업원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배 원장은 “현재 교수창업이나 학생창업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술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창업 기업의 사업적 역량을 끌어올리면서 기업의 전(全) 주기를 관리해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AIST 창업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방문해 기술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곳이기도 하다.
13일 대전 유성구 KAIST 창업원에서 만난 배현민 신임 KAIST 창업원장은 “연쇄 창업의 경험으로 교수와 학생들의 사업적 역량을 키우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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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총장이 ‘바쁜지 잘 알지만 맡아줄 수 있느냐.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된다’고 해서 단번에 수락했다. KAIST는 딥테크(첨단기술) 특허와 지식재산에 강한 힘이 있는데도 창업으로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자기 연구 분야만 파고드느라 금융 상품조차 잘 모르고, 갖고 있는 기술을 정확하게 알리는 훈련도 받아본 적이 없는 교수들이 많다. KAIST 홀딩스, KAIST 기술가치창출원, KAIST 창업원이 트로이카를 구축해 창업 초기부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겠다.”
KAIST에서는 창업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교수창업 68건, 학생창업 131건 등 총 199건의 창업이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KAIST의 기술을 사업화하는 KAIST 홀딩스도 출범했다.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인 차정훈 전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이 이달부터 KAIST 홀딩스의 대표이사를 맡아 연쇄 창업가인 배 원장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창업원장이 되기 직전까지 KAIST 기술가치창출원 내 지식재산 및 기술이전센터장을 맡았는데….
“대학 기술과 기업 간의 가교역할을 위한 센터를 이끌면서 지난해 11월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 두 명을 KAIST 겸직교수로 채용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자본과 만나지 못하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수합병 경험이 풍부한 자본시장 전문가 채용을 10명까지 늘려 좋은 기술을 알리고 창업 회사들의 자금 조달을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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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경우 여러 사업부서가 있고 이들을 총괄해 돕는 마케팅 재무 홍보 조직이 있지 않나. 작은 스타트업이 미처 신경 쓰기 어려운 업무 영역을 ‘레고 블록’처럼 프로그램화해서 원하는 기능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배 원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전기 및 컴퓨터공학 석·박사를 한 뒤 2009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해 왔다. 2001년 첫 창업(인터심볼)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기술 사업화(초당 10기가비트 속도의 통신용 MLSE 수신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결과였다. KAIST 교수 2년 차이던 2010년에 두 번째 창업한 테라스퀘어는 세계 최초로 1W 이하의 전력소모를 갖는 100기가비트 반도체를 상용화했다. 2013년 오비이랩(실시간 휴대용 고해상도 근적외선 뇌 영상장치), 2016년 포인트투테크놀로지(구리선과 광케이블을 대체하는 3세대 최첨단 케이블을 세계 최초 개발), 2021년 배럴아이(정량적 초음파 진단장비) 등 지금까지 이뤄진 5개 창업은 독보적인 기술력이 바탕이었다. 글로벌 유명 기업들이 이들 기업에 투자를 하고 위탁생산을 희망하고 있다.
―어떻게 연쇄 창업을 하게 됐나.
“창업 이전에는 모든 지식을 논문에서 구했다. 창업을 하고나서야 내가 개발한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명확히 알게 됐다. 그런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기술이 연구실 안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창업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늘고 있어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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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원장이 행정을 하는 자리라면 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을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떤 단계로 목표를 향해 진행할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스타트업을 경영하듯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수가 기술로 투자를 받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부분을 도울 수 있다고 본다.”
―KAIST의 강점은.
“지금 KAIST에는 창업을 장려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기술을 상업화해 인간 삶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빠르고 앞선 결과물을 만드는 롤 모델이 될 가능성이 많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이 활발해야 창업이 활성화하지 않나.
“2016년에 네 번째로 창업한 포인트투테크놀로지의 투자를 받으려고 국내 대기업들의 고위 임원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정작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더라. 반면 해외 기업들은 괜찮은 기술이다 싶으면 일사천리로 투자를 진행한다. 기술패권 시대에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야말로 기술인재를 확보하는 빠른 길이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