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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이재명 ‘제거’의 역설과 함정

입력 | 2023-03-06 03:00:00

민주당, ‘李 개미지옥’서 탈출하면
사법리스크 아닌 尹 국정성적 부상할 것
與 ‘방탄 프레임’만 붙들고 있어선 안 돼
나라 바로 세울 진정성과 역량으로 성과 내야



정용관 논설실장


어느덧 대선 1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마디로 지옥에 갇혀 있다. “회술레 수치” “조리돌림” 운운하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점점 더 궁지, 아니 사지로 내몰리는 형국 같다. 방탄 갑옷은 구멍이 뻥뻥 뚫려 너덜너덜해졌다. 업보(業報)다. 성남시장 때 일이 줄줄이 터져 나올 줄 어찌 알았겠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 대표가 되고 당헌 80조(부정부패로 기소 시 직무정지) 무력화까지 나섰지만 패장의 당당치 못한 처신에 적잖은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서고 있다.

견고했던 169석 민주당의 성벽은 깨지기 시작했다. 개딸과 문파의 내전(內戰)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문재인도 수박7적”이라는 개딸 구호가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본질을 꿰뚫는다. 첫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드러난 30여 표의 집단 이탈은 이심전심인지, 조직적 반란인지 알 수 없지만 문 전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 대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주 전 칼럼에서 “설마” 하면서도 민주당이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할지 모른다고 썼다.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또 제출하면 아예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논의가 실제 나오고 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가 비명 측의 일격을 받은 친명 핵심들은 이판사판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이들은 국민 여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부의 적에 굴복하는 게 더 두렵다. 총선 공천이 위태롭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 중에 이 대표와 끝까지 정치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안개가 짙어 길이 안 보이니 일단 다수의 편에 섰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하며 여론의 눈치를 보는 회색지대 의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투표 보이콧 당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설사 보이콧을 한다 해도 두 번 세 번 할 수 있겠나.

결국 이 대표가 언제 어떻게 결단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어느 비명 의원 표현대로 “방탄 프레임에 갇혀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요즘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는 뚜렷하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개딸과 친명 핵심들의 호위하에 끝까지 민주당 담장 안에 숨으려 한다. 여권으로선 최상의 그림이다.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전의 계기는 남아 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민주당이 뻔히 알면서 폭망의 길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3년 11개월 비정상적인 분탕질을 치다가도 총선만 다가오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을 띠곤 하는 게 그간 봐온 한국 정당들의 생리다. 죽을 지경이 되면 살길을 찾느라 몸부림을 친다. 비대위 체제로 가든, 신장개업을 하든, 공천 물갈이를 하든…. 자의든 타의든 이 대표가 민주당에서 손절되면 국면은 바뀐다. 민주당은 변신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심판을 받았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 사법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국민연금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개혁엔 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야당이 돼서도 반성을 하기는커녕 반도체법 등 성장 동력 살리기는 제쳐둔 채 매년 수조 원을 허공에 날리는 양곡관리법이나 강행 처리하려 한다. 그래도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현 정권이 오만함을 보이고 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벗어던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달라지는 게 여론이다.

민주당 내부의 반란 기류가 여권에 심상치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쌍방울이든 백현동이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여권으로선 정치 득실만 따진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대표의 빠른 정리로 이어져 역설적으로 여권엔 독(毒)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가 법정으로 넘어가면 경제 리스크가 부상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리도 없고…. 방탄 프레임은 점차 약해지고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가 도드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듯 여권 안팎에선 방탄 프레임을 어떻게 더 활용할지, 야당의 개미지옥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길게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속도 조절’ 얘기가 오간다. 허나 이는 함정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든 여권으로선 상황 변수일 뿐 본질은 아니다. 호가호위 세력을 내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진정성과 실력으로 성과를 입증하는 정공법을 펼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