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국내 300인 이상 기업 60%가 호봉제”

입력 | 2023-03-02 03:00:00

‘공정한 보상’ 사회적 요구 커지며
업무 따른 ‘직무급제’ 도입 목소리
산업계 “연공서열, 기업경쟁력 약화”
노조 동의 필수… 재계, 법개정 요구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60% 안팎에 이르는 국내 대기업 호봉제 비율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사무직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요구하는 ‘공정한 임금 보상’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맡은 업무의 중요성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직무급제’ 도입이 확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호봉급제 임금체계를 운영 중인 300인 이상 사업장은 59.9%다. 10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이 비율이 67.9%나 된다. 반면 직무급제를 도입한 300인 이상 사업장은 35.3%, 1000인 이상 사업장은 35.4%에 그쳤다. 사업장별로 복수의 제도를 혼용해 운용할 수 있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큰 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021년 12월 ‘한·일·유럽연합(EU) 근속연수별 임금 격차 국제비교와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조사 결과 한국은 3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의 2.95배로 나타났다. EU 15개국 평균은 1.65배, 일본은 2.27배였다.

산업계에서는 연공서열 중심 체계가 지속될 경우 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영 컨설팅 업체 머서코리아의 김주수 부사장은 경총의 ‘임금·HR연구 2023년 상반기호’에 기고한 글에서 “(호봉제는) 기업 입장에선 성과와 무관하게 인건비가 늘어나는 부담이 있고, 구성원 입장에선 자신의 역량을 높이려는 의지가 꺾일 수 있다”며 “직무급제가 연공급제(호봉제)를 대체할 임금체계로 떠오른 배경”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도 지난해 12월 내놓은 권고문에서 “우리 기업의 입금체계에서 연공의 영향은 압도적이며 이는 임금의 하방 경직성을 확대해 기업의 신규 채용 기회를 제약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은 MZ세대에게도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지난달 2일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돌입한 상태다.

2021년 11월 ‘잡 그레이드(Job Grade)’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통신사업자 NTT는 직무급제로의 적극적 전환 사례로 꼽힌다. NTT의 근로자는 개인별 업무 목표 달성률, 담당 직무의 난이도 등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이와 연동해 임금이 결정된다.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보여주면 연차와 관계없이 높은 등급을 받고, 등급이 올라가면 임금도 상승한다.

국내에선 현행법에 가로막혀 개편 논의가 쉽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르면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뀔 때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노조는 호봉제보다 성과 압박이 심한 직무급제를 꺼리기 때문에 임금 체계 전환을 반대해 왔다. 지난해 1000인 이상 사업장의 호봉채택률을 살펴보면 노조가 있는 곳은 80.6%, 없는 곳은 35.9%로 차이가 극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계에선 ‘사업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기업이 임의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을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노동계 저항이 큰 데다가 여소야대 국면이라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