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영 시인 ‘토끼띠 아내’ 김현경 여사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18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진짜 알맹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며 웃고 있다. 용인=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시인 김수영(1921~1968)이 1960년대 남긴 에세이 ‘토끼’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생업으로 닭을 길렀던 시인이 “닭을 기르는 집에는 반드시 토끼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키운 토끼를 보고 떠오른 단상을 적은 것이다. 글에 등장하는 ‘토끼띠 아내’ 김현경 여사(96)를 19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만났다. 김 여사는 상수(上壽)를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 모습이었다.
김 여사와 김 시인의 인연은 81년 전인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아저씨의 친구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어요. 행색이 아주 기괴했어요. 눈은 부리부리 하고. 제가 힘들던 시절 ‘같이 문학하자, 너 재주 있다’며 만나기 시작했죠. 우리 집 담벼락에 와 김 시인이 휘파람으로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부르면 제가 ‘너 왔구나’하고 나가 데이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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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젊은 시절 모습. 동아일보DB
김 시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가세는 기울고 병치레로 고생하다 김 여사를 만났지만 1950년 결혼 직후 6˙25가 터졌다. 김 시인은 북한 의용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했다. 해방 이후 ‘폭포’ ‘푸른 하늘을’ 등 강렬한 현실의식을 추구한 시를 쏟아냈지만 1968년 불의의 사고로 그가 ‘토끼같이 예뻐했던’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숨졌다.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난 요즘에도 김 시인이 남긴 시와 산문이 갈수록 더 많이 연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여사는 “남의 흉내를 안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부벌렌데, 정직하고 진실했어요. 늘 본질을 추구하면서 새롭게 쓰고 차원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머물지 않고 늘 앞서가는 자유정신으로 펜을 잡았죠.”
김 여사는 ‘김수영의 시는 난해하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표현의 방식이 높고, 생각하는 차원도 보통이 아닐 뿐 난해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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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는 눈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도 혼자 집에 있으면서 노상 일과가 김 시인의 책을 읽는 거예요. ‘김수영 학문’이 생길 정도로 많이 읽히고 인정받는데,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이 들어…안타깝죠.”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