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의 일렁이는 마음의 산, 생트빅투아르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오늘의 ‘영감한스푼 클래식’은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준 작가 폴 세잔의 시대로 떠나보겠습니다.
‘세잔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미술을 알 수 없다’고들 하죠. 세잔의 그림이 없었다면 피카소도 없었고, 피카소로 가능했던 이후의 수많은 새로운 시도들도 연결고리를 잃게 됩니다.
광고 로드중
그래서 세잔의 그림을 최대한 쉽고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레터를 준비해보았습니다. 오늘 레터를 찬찬히 살펴보신다면, 앞으로 이야기 할 현대미술도 좀 더 쉽게 접근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 19세기 말 프랑스와 유럽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산을 마주하다 죽고 싶었던 화가
세잔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 갖고 다녔던 화구와 모자, 우산.
몇 시간이 지나고 쓰러진 그를 세탁소 사장이 발견해 마차에 싣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화가를 진찰한 의사는 감기에 걸렸을 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그를 안심시킵니다. 다음날 화가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다시 심하게 앓게 된 화가는 이후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던 세잔은 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화가가 바라는 것이었답니다. 세잔은 프랑스어로 ‘대상을 마주하다가’(sur le motif)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이 ‘Sur le motif’라는 프랑스어는 당시 인상파 화가들이 모델이나 과거의 그림이 아닌 실제 풍경과 생활 속 인물을 보고 그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즉 내가 그릴 대상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관찰하는 것이 내 생의 전부이자, 그것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미였죠. 그의 바람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광고 로드중
일렁이는 마음의 산을 그리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1902-1906년. 사진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생트빅투아르산의 모습. 정확히 같은 위치는 아니지만 상상력을 더해 비교해봅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세잔을 존경했던 후배 화가 에밀 베르나르는 그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세잔의 방식은 보통과 완전히 다르며 복합적이다. 그는 그림자 한 면으로 시작해, 두 번째면, 세 번째 면을 쌓아 올렸다. 그러면 색깔들이 서로 매달려 대상의 색뿐 아니라 형태도 드러냈다. 작품의 방향은 조화의 법칙에 따라 정해졌고, 전체 그림은 이미 세잔의 마음 속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걸 알수 있었다. 그는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장인이 그랬을 것처럼, 연관된 색들이 서로 이어지도록 그리다가 어느 순간 반대되는 색이 맞물리도록 했다.”다른 그림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과 큰 소나무’, 1887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폴 세잔, ‘생빅투아르산과 큰 소나무’, 1887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광고 로드중
즉 세잔이 산을 그릴 때, 아카데미 화가가 사용하는 원근법이나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표현 방식에만 집중한 것과 달리, 그는 어릴 적부터 친구와 함께 뛰어 놀았던 산의 기억,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주는 심상과 같은 것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어릴 적 세잔은 절친이었던 소설가 에밀 졸라와 함께 오래도록 걸으며 이야기하고, 생트빅투아르산으로 들어가 계곡에서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의 진실’을 찾고 싶어 했던 소년들은 속물적 세상을 벗어나 자연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했던 것이죠. 졸라의 소설 ‘작품’에는 이런 시간들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도 등장합니다.
폴 세잔, 수영하는 사람들, 1874–75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들은 나무와 언덕, 시냇물에 대한 동경을 가졌고, 홀로 자유로워지는 것의 무한한 기쁨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소위 말하는 ‘세계’로부터 탈출구를 찾았고 본능적으로 자연의 품으로 향했다. … 계곡 깊은 곳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하루종일 옷을 입지 않은 채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웠다가 다시 물로 뛰어들면서 수초를 잡고 장어를 쫓으며 시간을 보냈다.“이런 어린 시절의 나를 품어준 산, 넓게는 땅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산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사진으로는 역부족이겠죠. 세잔은 어떤 나무는 크게 그리고 또 어떤 길은 임의로 숨기거나 드러내면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순간포착한 사진과 달리, 세잔이 눈과 마음으로 보았던 산을 우리는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잔의 이런 그림은 어떤 맥락에서 탄생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주에 이어가보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
김민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