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이제 다들 편하게 앉아서 야구 보세요.”
에런 저지(30·뉴욕 양키스)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AL) 한 시즌 최다 기록인 62호 홈런을 날린 뒤 자신의 홈런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지는 5일 텍사스 방문 더블헤더 2차전에 톱타자로 출전해 왼쪽 담장을 넘기는 선두타자 홈런을 날렸다. 그러면서 지난달 29일 토론토 방문경기에서 팀 선배 로저 메리스(1934~1985)의 AL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뒤 6경기 만에 새 기록을 남겼다.
단, 당시는 MLB 선수 사이에 경기력향상약물(PED)이 만연했던 ‘스테로이드 시대’였다. MLB에서 도핑 선수를 처벌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한 시즌 60홈런을 기록한 건 저지가 처음이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래틱‘은 “이제 뉴욕(60호), 토론토(61호), 텍사스(62호) 팬들은 평생 ’내가 역사의 순간에 있었다‘고 가족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됐다”면서 “60홈런 이후 야구팬들이 약 2주간 저지의 신기록 도전을 한마음으로 응원한 건 이질적인 미국 사회를 단합시킨 흔치 않은 사건”이라고 평했다.
단, 이 역사를 목격한 그 어떤 야구팬이라도 저지의 ’진짜 가족‘보다 많은 자랑거리를 얻지는 못했을 터다. 이날 경기가 열린 촉토 스타디움에는 저지의 부모님과 아내가 자리했다. 저지는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며 대기록을 쓸 때마다 가족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하곤 했다.
저지는 태어난 바로 다음 날 교사였던 웨인-패티 저지 씨 부부에게 입양됐다. 저지는 신인 시절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부터 “신께서 부모님과 나를 이어준 것 같다”며 입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부모님 역시 “복은 우리가 받았다. 저지와 형 존 모두 입양해 키웠다. (한국에서 입양한) 존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둘 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저지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형을 보러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MLB 야수 가운데 최장신(201cm)인 저지는 ‘야구 하기에는 몸이 너무 크다’는 편견도 이겨냈다. 저지는 “사람들이 ‘넌 188cm짜리 선수들이 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어!’라고 할 때마다 ‘내가 왜 안 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