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체 역량보단 얼마나 절실하냐 문제 대통령실 직원은 판교 IT기업 다니는 것 아냐
이승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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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일부 개편한 뒤 효과를 놓고 관측이 분분하다. 핀셋 교체를 잘했다는 낙관론도 있고, 그 정도 바꿔서 되겠느냐는 비관론도 있다. 대통령이 바뀌는 게 더 중요하다는 여론도 여전하다.
대통령 본인이 정치인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이제 스스로 인식하는 듯하니 차치하자. 앞서 말한 참모 교체 효과로만 보면 둘 다 아니라고 본다. 사실 온갖 검증 다 뚫고 남은 손바닥만큼의 보수 인재풀에서 실력이나 역량은 몇몇을 제외하곤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참모들이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하게 대통령을 보좌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 자체보다는 일하는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한 비판 중 ‘검찰 중심 인사’를 제외하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톱3를 꼽으라면 △윤 대통령이 주변 말을 잘 안 듣는다 △뭐를 하려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의 간판 브랜드가 없다 정도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100% 대통령 책임이라고만 하면 현실적으로 답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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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다르지만 필자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를 관찰하며 임기 5년 가까이 절박하게 일한 참모를 두 명 기억하고 있다. 분야는 달랐지만 ‘꼴통’ 소리를 들어가며 논쟁적으로 자기 일에 매달렸고 이슈를 발굴했다. 강박증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자기 분야는 늘 생각이 정리되어 있어 대통령이 언제든 물어도 간결하게 브리핑해 그의 눈과 귀를 장악했다. 이명박 정부 전체의 성패를 떠나 두 사람의 족적은 여전히 뚜렷한 편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두 사람은 공교롭게 지금 윤 대통령을 돕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사람의 업무 스타일이 널리 퍼지지 않는 게 안타깝다.
대통령실은 화려하고 고귀해 보이지만 업무는 그렇지 않다. 정무·정책·소통 역량에 개인의 심신 건강까지 뒷받침되어야 하는 정치의 최전방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본격화된 경기 침체와 미중 갈등까지 겹친 상황에서 대통령 참모라면 분야에 상관없이 ‘정장 입은 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대통령의 입과 눈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웰빙형 보좌로는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어렵다.
주5일을 넘어 주4일이 거론되는 시대에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권을 성공시키겠다는 임기 초의 대통령 참모들에게 워라밸은 아직 가당치 않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판교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게 아니다. 앞서 말한 두 명 중 한 명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는 치료차 침을 맞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미국의 투자회사 ‘거스리그룹’ 회장이자 세계적인 비즈니스 코치로 부상한 댄 페냐의 도발적인 유튜브 강연 중 일부를 소개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가 워라밸이 있었나요? 아니죠. 어울려 놀러 다니길 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집에도 안 가고) 사무실에서 잤죠. 그런데 당신은 (뭐를 이뤘다고) 워라밸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