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 내부 보고서
1893년 일본 도쿄 주일 조선공사관의 당시 모습. 국회도서관 제공
이한응 열사
1905년 5월 12일 영국 런던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영국 주재 외교관이었던 이한응 열사(1874∼1905)는 국권이 상실돼가는 상황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는 국내에도 알려지며 이후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 열사가 떠난 지 117년. 그가 순국한 주영 대한제국공사관은 현재 36가구가 거주하는 공공임대아파트로 바뀌었다. 런던 켄싱턴구 얼스코트 트레보버 4번지에 있는 이 건물은 별다른 안내석도 없다. 공사관은커녕 이 열사의 순국 현장이란 사실조차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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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옛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영구임대주택으로 바뀌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독립기념관 제공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87년 주일 공사관을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 청나라(중국)에 설치된 공사관 실태를 파악한 결과 6곳 가운데 3곳이 안내석도 없는 상태이며 한 곳은 건물이 아예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재단 내부 보고서 ‘재외공관 건축물의 문화재적 가치 검토’에 따르면 복원공사를 거쳐 2018년 재개관한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 공사관에 안내석이 세워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프랑스 파리에 있던 공사관에도 안내석은 있지만 주러 공사관은 현재 민간아파트로, 주불 공사관은 연립주택으로 각각 바뀌었다.
일본 도쿄 도심에 있었던 주일 대한제국공사관은 해외 공관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당시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특정 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 국회도서관 등에서 공사관의 옛 지명주소와 당시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별다른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공사관이 여러 차례 이동했고 해당 건물이 철거됐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다”라며 “여러 사료를 통해 추적이 가능한 만큼 기초 고증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주청 대한제국공사관 터로, 1915년 옛 건물이 철거되고 현재 3층짜리 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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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한제국공사관에는 망국의 위기에도 주권을 지키려 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그 흔적을 우리가 지키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