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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슬럼프 딛고 정상 오른 ‘메이저 퀸’ 전인지의 반짝이는 기부

입력 | 2022-07-09 16:46:00

[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후 눈물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오른쪽)와 US여자오픈 트로피를 껴안고 기뻐하는 전인지. [전인지 인스타그램]

“당신을 억누르고 있는 바로 그것이 당신을 더 높이 오르게 해줄 거야.”

미국 월트디즈니의 유명 애니메이션 ‘덤보’에 나오는 명대사다. 남달리 큰 귀를 지녀 따돌림당하는 아기 코끼리 덤보에게 생쥐 티모시가 건넨 희망의 메시지다. 1941년 처음 제작된 ‘덤보’는 78년 만인 2019년 팀 버턴 감독의 실사 영화로 돌아와 주목받았다.

불쑥 ‘덤보’ 얘기를 꺼낸 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뛰는 전인지(28)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인지의 별명이 바로 덤보. 키(175㎝)와 귀가 커서 붙은 별명이다.

전인지는 6월 27일 끝난 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눈물을 쏟았다. 2018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3년 8개월간 무관에 그치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그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진품 우승 트로피 들고 랭커스터 찾아

전인지 공식 팬클럽 ‘플라잉 덤보’ 회원들이 KPMG 위민스 챔피언십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전인지 인스타그램]

7월 2일 귀국한 전인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신의 공식 팬클럽 ‘플라잉 덤보’ 회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전인지는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팬덤을 지닌 인기 골퍼다. ‘플라잉 덤보’ 회원 수는 1만 명이 넘는다. 장기간 우승이 없다 보니 전인지는 자신을 향한 지극한 관심이 오히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부담감이 되기도 했다. 전인지는 “괜찮지 않을 때도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모두에게 늘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0년 넘게 전인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오랜 스승 박원 코치는 “스폰서나 후원사와 계약 후 성적이 별로면 먹튀 논란에 휩싸인다. 전 프로가 그런 부분도 많이 의식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전 프로를 아끼는 팬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에도 많다. 어떤 분은 국제선 항공권을 끊어 응원 오기도 한다. 뭔가 보여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기 코끼리의 큰 귀가 세상을 훨훨 날게 해줬듯이,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은 전인지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정상에 서서 웃는 원동력이 됐다. 골프채를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족, 친구, 후원사, 팬 덕분에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전인지의 우승 후 소감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직후 전인지의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전인지는 대회 종료 직후 2시간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로 서둘러 이동했다. 인구 5만8000명의 랭커스터는 전인지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2015년 랭커스터컨트리클럽(LCC)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인연이 있다. 최고 권위를 지닌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해 덜컥 챔피언이 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전인지는 지역 주민을 위해 1만 달러를 기부한 뒤 2017년 ‘전인지 LCC 교육재단’까지 설립했다.

해마다 랭커스터를 찾아 장학사업을 펼치고 현지인들과 만남의 시간도 갖는 전인지는 올해는 LPGA투어 우승까지 해 금의환향했다. 위민스 PGA 챔피언십을 주최한 미국프로골프협회(PGA)는 전인지가 복제품이 아닌 진품 트로피를 들고 갈 수 있게 했다. 전인지와 랭커스터를 이어준 US여자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담당 직원과 함께 US여자오픈 트로피를 현지로 보냈다. 전인지의 랭커스터 방문이 가지는 상징성을 잘 알기에 가능했던, 특별한 배려다.

전인지는 메이저대회 트로피 2개를 들고 랭커스터 시민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라운드, 사인회 등 다양한 행사를 이어갔다. 전인지 LCC 교육재단은 매년 도움이 필요한 지역 학생과 주민 10명에게 각각 1만 달러씩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해마다 수천만 원을 재단에 기부한 전인지 이외에도 팬클럽 회원들이 기금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

전인지의 기부 활동은 남다르다는 평가다. 우승한 선수가 거액을 쾌척하는 사례는 자주 있지만, 전인지는 자신의 기부가 어떤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외국 선수인 전인지는 거액의 우승 상금을 수령하고 작별인사만 남긴 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원 코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학생, 골프장 직원들의 자녀, 캐디 등에게 장학금 수령 우선순위가 부여된다”고 전했다.


아름답고 단순한 스윙 교과서 찬사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직후 전인지(왼쪽에서 네 번째)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로 이동해 라운드, 사인회 등 다양한 행사를 이어갔다. [전인지 인스타그램]

전인지의 또 다른 별명은 ‘메이저 사냥꾼’이다. LPGA투어 통산 4승 가운데 3승을 메이저대회 타이틀로 채워서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에서도 메이저대회 3승을 기록했으며,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PGA) 투어 2승을 합하면 한미일 메이저대회 우승만 8회에 이른다. 프로 통산 14승 가운데 절반 이상이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인 것이다. 큰 무대에 강한 비결을 묻자 전인지는 “선수라면 누구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고 싶고,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된다. 메이저대회 코스가 나의 확률 높은 공략법과 잘 맞기도 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코치는 “메이저대회는 코스 세팅이 까다롭고 선수들의 모든 능력을 테스트하게 된다. 트러블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며 “전 프로의 탁월한 게임 운용 능력과 판단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인지의 스윙은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모범적인 교과서 같다는 찬사를 받는다. PGA투어닷컴은 “아름답고 단순하다”는 표현을 썼다. 전인지의 스윙에서 최고 장점은 일관된 리듬이다. 드라이버나 우드 같은 긴 클럽이든, 웨지 같은 짧은 클럽이든 길이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늘 한결같다는 뜻이다. 박 코치는 “몸에 일정한 리듬이 익으면 그 리듬과 박자에 따라 일관된 동작이 나오게 돼 정확성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데 휴대전화의 메트로놈 애플리케이션(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인지도 오래전부터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같은 박자로 백스윙, 다운스윙, 피니시 연습을 반복하면 스윙 스피드가 일정해져 샷 거리를 잘 맞출 수 있다. 또 긴장도 풀려 부드러운 스윙을 만들 수 있다. 눈을 감고 빈 스윙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2015년 US여자오픈 우승으로 LPGA투어에 직행한 뒤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메이저대회 2승를 거둔 전인지는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1승만 남겨놓았다. 5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3승을 올렸기에 더 셰브론 챔피언십(ANA 인스피레이션)과 AIG 여자오픈(브리티시여자오픈) 가운데 1승을 추가하면 대업을 완성한다.

전인지는 2015년 US여자오픈에 출전했을 당시 여름밤을 수놓는 반딧불이가 큰 영감을 줬다고 했다.

“반딧불이가 밤하늘을 밝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지난 4년 동안 전인지는 정상에 오르려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했다. 은퇴를 고민할 만큼 마음고생도 심했다. 하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많은 팬이 보내준 응원 메시지에 힘을 냈다. 이제 다시 전인지가 밝은 빛을 나누고자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47호에 실렸습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