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어령 장관, 죽음 직전까지 쓴 육필원고 ‘눈물 한 방울’ 내일 출간 삶에 애착-먼저 간 딸에 미안함 등 마지막 순간까지 성찰했던 혼 담겨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름다워”
고인은 글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도 남겼다. 김영사 제공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는 악필이 됐다. 2019년 11월 6일 원고는 정돈된 글씨로 썼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했다. 이에 비해 2022년 1월 23일 쓴 글은 읽기 힘들 정도로 뒤틀렸다. 검은 펜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에선 육신의 고통이 느껴졌다. 고인은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 원고를 끝맺었다. 30일 출간되는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에세이 ‘눈물 한 방울’(김영사)의 육필 원고엔 죽음의 순간까지 성찰했던 고인의 혼이 담겨 있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열린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에세이 ‘눈물 한 방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고인의 육필 원고를 공개한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고인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육필원고에는 건강 상태 등 그 사람의 전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중합니다. 선생은 (마우스) 더블 클릭이 안 되고 (컴퓨터) 전자파 때문에 할 수 없이 노트를 썼어요. 노트를 읽다 보면 혼자 저승으로 가야 하는 인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죠.”(강 관장)
항암치료를 거부한 고인은 밤이 되면 자신의 약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고인은 2021년 7월 30일 글에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울며 “엄마 나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처럼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를 향해 “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살고 싶어서 내 마음은 흔들린다”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고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고인은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서적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승무 교수는 “아버님은 죽음 직전까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강조했다”며 “남겨진 그림을 보니 아버님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동화책을 쓴 듯하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