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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와 갱년기 이석증[이상곤의 실록한의학]〈123〉

입력 | 2022-06-17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기를 통으로 소금에 절여 만드는 굴비의 약명(藥名)은 ‘상어(G魚)’다. 이때 한자 상(G)은 기를 양(養)자 밑에 물고기 어(魚)자가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몸을 보양하여 기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굴비는 몸을 보양하여 기르는 생선이라는 뜻이 된다. ‘본초강목’에는 “순채와 같이 먹으면 수축된 위장을 열어주고 기운을 북돋는다”고 쓰여 있다. 조기라는 말도 기운을 돋운다는 ‘조기(助氣)’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여기에 근거한다.

영광굴비의 재료가 되는 조기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는 알을 밴 채 연평도로 이동한다. 절기상 곡우 때쯤 되면 영광의 법성포 앞 칠산 바다를 지나간다. 곡우살굴비는 바로 이때 칠산 바다에서 잡힌 조기를 말린 것으로, 최상품 대접을 받는다. 곡우 때인 3월 말, 4월 초를 놓치면 사옹원이나 예조에서 임금께 계를 올려 사죄를 요구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조기의 한자어는 석수어(石首魚)다. 여기서 ‘석(石)’은 발생학적으로 보면 귀에 생기는 이석(耳石)을 가리킨다. 물고기의 이석은 인체 평형기관의 먼 조상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 형성과 성장, 탈락 과정은 인간의 평형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좋은 모델이 된다. 이와 관련해 전 세계 양식 연어의 절반 이상이 이석 기형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른 증식을 위해 사용한 성장호르몬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변화는 인간에게도 이석증을 일으키고 이석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데 깊숙하게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건강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여성의 이석증 비율이 남성보다 2.5배 높다. 특히 50대 갱년기 여성의 이석증 발병률이 가장 높다. 단순히 퇴행성 질환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보다 갱년기 호르몬 변화에 따라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호르몬 변화로 가벼워진 이석은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후반고리관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갱년기 여성은 호르몬 분비의 난조로 뼈의 형성 능력이 약해지면서 뼈엉성증(골다공증)을 앓기 쉽다. 이석 또한 칼슘의 일종이기에 부서지거나 가벼워져서 떨어져 나간다.

이석이 떨어져 나가면 평형기관에 이상이 생기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데 운동 부족도 이석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원래는 활발한 신진대사를 통해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과정을 밟아야 하는 이석이 운동 부족으로 세반고리관 일부에 쌓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 따라서 이석증의 치료는 단순히 이석뿐 아니라 호르몬 조절, 운동의 정도, 칼슘의 보강 등을 종합적으로 해야 한다.

한의학은 이석증의 원인을 담음(痰飮)이라고 지목한다. 담음은 체내의 수액(水液)이 잘 돌지 못하여 만들어진 병리적인 물질, 혹은 그 물질이 일정 부위에 몰려서 나타나는 병증을 뜻한다. 즉, 어지럼을 유발하는 이석은 병리적 노폐물이므로, 이를 제거하고 건강한 이석이 생기도록 기혈의 흐름을 보강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갱년기로 인한 이석증은 호르몬 변화로 생기는 만큼 목단피로 열을 내리고 여성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한방치료가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