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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성공으로 둔갑한 거짓들… 프로이트 ‘팩트체크’

입력 | 2022-06-04 03:00:00

◇프로이트의 숨겨진 환자들/미켈 보르크 야콥센 지음·문희경 옮김/352쪽·2만2000원·지와사랑



지크문트 프로이트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893년 알프스를 여행하던 중 18세 소녀 카타리나를 만났다. 카타리나는 프로이트에게 자신이 요즘 불안과 발작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카타리나는 2년 전 이모부가 딸인 사촌언니와 한 침대에 있는 부적절한 장면을 목격한 뒤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또 4년 전엔 이모부가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카타리나의 사연이 당시 그가 연구하던 ‘처녀 불안’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판단했다. ‘처녀 불안’은 처녀가 처음으로 성욕을 느꼈을 때 공포에 압도당해 발작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또 이모부가 카타리나에게 접근했을 때 생긴 불안감이 이모부와 사촌언니가 함께 있는 사건을 겪고 나서야 발작이라는 ‘지연된 외상’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1895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 사례를 상세히 설명하며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프로이트는 1924년 카타리나를 유혹한 건 사실 이모부가 아닌 아버지라고 정정했다. 그러면서 카타리나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성적 유혹으로 인해 몸이 아팠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소녀의 내면에 억압된 ‘근친상간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찾아낸 사실은 사뭇 다르다. 카타리나의 실제 이름은 아우렐리아 크로니히(1875∼1929)다. 당시 이모부와 사촌언니가 한 침대에 있었던 사건은 동네에 소문이 다 난 상태였다. 소녀가 홀로 간직한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지연된 외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았다. 크로니히의 후손들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크로니히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프로이트는 정말 진실만을 적었을까.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이트의 진실을 파헤친다. 프로이트가 논문을 통해 치료했다고 주장한 환자들 중 38명을 추려 행적을 추적한다. 차분히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간다.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논문에서 정신분석학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로 언급했지만 사실 치료가 되지 않았던 세르게이 판케예프와 베르타 파펜하임(왼쪽부터). 저자는 “인간이 행하는 일인 이상 완벽할 수 없다. 다만 완벽을 추구해야 하며 진실을 은폐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와사랑 제공 

프로이트는 자신이 세르게이 판케예프(1887∼1979)의 심각한 불안증과 우울증을 치료했다고 썼다. 그러나 판케예프는 후대 연구자들과 만나 “프로이트가 나를 치료했다는 건 다 거짓이다”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동료가 치료한 베르타 파펜하임(1859∼1936)도 훌륭한 치료 성공 사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펜하임은 신경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시달리던 아나 폰 리벤(1847∼1900)을 치료하면서 적정량 이상의 모르핀을 주입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쌓아올린 성과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허실 역시 알려져야만 한다. 욕심 때문에 버린 연구자의 양심은 언제든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법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