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회계사가 25일 열린 대장동 개발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23차 공판에 출석했다 오전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런 피고인에게 하루 종일 (법정에) 나와 있으라고 하면 변호인으로서 못할 짓인 것 같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사업 개발특혜 의혹 사건 23차 공판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재판 시작 40분 만에 법정을 나갔습니다.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최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유 전 직무대리가 “식사를 못하고 있다. 후유증이 있다”며 “바로 구치소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재판부가 잠시 논의 뒤 유 전 직무대리의 변론을 분리하고 재판을 진행하려 하자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무리한 재판 진행”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작심한 듯 “당사자가 제정신이 아니다. 재판을 절차대로 진행한다고 하면 누워서 멍하니 있으라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 주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발부 결정을 두고도 “편하게 재판하셔야 하고 증거인멸 우려도 있으니까 물론 잡아두면 좋을 것”이라며 비꼬듯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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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자리에 남아 있던 유 전 직무대리는 “제가 말씀을 좀 드리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남이 얘기하는 것은 쉽다”며 “단 1초도 숨을 쉬고 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수면제) 50알을 먹은 것이 맞다”고 했습니다. 이어 자신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의심받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모멸감을 느낀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날 진행된 23차 공판에서는 정영학 회계사에 대한 증인신문과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대한 증거조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들이 무단 퇴정하며 재판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정영학 녹취록은 29일 열린 24차 공판에서 처음 재생됐습니다. 27일에는 곽상도 전 의원의 2차 공판기일이 진행됐습니다.
● 정영학 녹취록 법정서 첫 재생 ‘전방위 로비 정황’
재판부는 29일 24차 공판을 시작하며 유 전 직무대리 측에 먼저 주의를 줬습니다. 재판부는 “방어권 행사를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장을 하고 변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가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주장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재판장 허가 없이 무단 퇴정하는 행동은 경우에 따라 방어권 남용으로 보일 수 있다. 향후 주의해 달라”고 경고했습니다.이날 법정에서는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파일 66개 중 6개가 재생됐습니다. 정 회계사가 2012~2014년, 2019~2020년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등과 한 대화를 녹음한 내용입니다. 정 회계사는 녹음파일 재생에 앞서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관여하지 않은 일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방어 차원에서 녹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생된 6개 녹음파일에는 2012년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설립시켜 대장동 사업을 민관합동 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기 위한 김 씨와 남 변호사 등의 지역 정치권 인사 등에 대한 로비 정황이 담겼습니다. 이듬해 2월 이들의 의도대로 성남시의회에서 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됐고 7개월 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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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인 정영학에게 호통친 피고인 곽상도 “답답해서”
올 2월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곽 전 의원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아들 병채 씨를 통해 퇴직금 등 명목으로 25억여 원(세전 50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7일에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 입사한 아들 병채 씨를 통해 25억여 원(세전 50억 원)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는 곽상도 전 의원의 2차 공판기일이 열렸습니다. 이날은 정 회계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습니다. 정 회계사는 “지난해즈음 화천대유 양모 전무가 병채 씨에게 퇴직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반대했더니 (화천대유 대주주) 김 씨가 ‘컨소시엄이 깨지지 않게 하는 대가’라고 했다는 말을 양 전무에게 전해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곽 전 의원은 2015년 3월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공모를 앞두고 김 씨로부터 “화천대유 측 컨소시엄 대표사인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남도록 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대가로 화천대유에 입사한 아들 병채 씨를 통해 25억여 원(세전 50억 원)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정 회계사의 증언은 이런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불편한 표정으로 증인신문을 지켜본 곽 전 의원은 재판부가 오전 재판을 마치고 퇴정한 뒤 정 회계사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호통을 쳤습니다. 피고인의 모습이라기보다 국정감사 증언대에 선 증인을 꾸짖는 국회의원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자리에서 짐을 정리하던 정 회계사는 곽 전 의원을 잠깐 쳐다보고선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오후 재판이 시작된 뒤 상황을 인지한 재판부는 “제가 보기에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공판 외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말씀 안 드려도 잘 아는 사항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곽 전 의원이 “답답해서 그랬다”고 하자 재판부는 “답답하면 정식 절차를 통해서 하는 것이 재판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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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장동 재판은 다음 달 2일 열립니다. 이날도 정영학 녹취록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