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첫 ‘코로나19 엔데믹(endemic·풍토병) 국가’가 될 수 있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독감 같은 풍토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체계, 변이 바이러스 대응, 국민의 면역력 등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가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지난 1일 “우리나라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고 밝혔다. 방역당국은 2주 후 코로나19 유행 감소세가 유지되고 의료 체계가 안정적이면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규제를 풀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축포를 너무 성급하게 터뜨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직 코로나19를 독감같은 풍토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코로나19의 경우 타미플루처럼 독감에 걸리면 의사로부터 처방 받아 모든 약국에서 쉽게 사서 복용받을 수 있는 치료제가 아직 없다. 그나마 있는 팍스로비드를 처방받는다고 해도 비용이 5일치 30알에 총 530달러(약 60만원)에 달해 부담도 큰 편이다.
사망자 수 관리도 엔데믹으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백 교수는 “사망자 수가 많은데 엔데믹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코로나19로 8172명이 숨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간 코로나19 사망자가 독감 사망자 수 정도인 3000명 정도가 되면 의료 체계가 감당할 만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한 해 3000~5000명 수준인데, 코로나19와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백신 접종과 일반적인 감염관리를 통해 관리되고 있다.
잇따라 출현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도 코로나19를 풍토병처럼 관리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엔데믹으로 가려면 새 변이로 인한 유행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데,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오미크론 세부계통 BA.2보다 전파력이 10% 정도 강한 재조합 변이 ‘XE’가 영국, 대만 등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국민이 백신을 맞은 뒤 항체가 얼마나 잘 형성되느냐도 코로나19를 풍토병처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다. 집단면역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집단면역에 가까워지면 코로나19를 풍토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여지가 좀 더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집단면역이란 집단의 다수가 감염병에 대한 면역성을 가져 바이러스 전파가 낮아지면서 면역성이 없는 소수도 보호받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백 교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지만 앞으로 집단면역이 달성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면서 “기초감염재생산지수(확진자 1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수치)는 집단면역의 변수로 작용하는데, 변이의 종류와 방역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집단면역에 가까워지면 유행의 규모가 줄 수밖에 없어 (코로나19가) 관리 가능한 엔데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5일 0시 기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426만7401명으로, 전 국민의 약 28%를 차지한다. 무증상자와 미검사자 등 숨은 감염자까지 고려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