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문자, 폐암선고-남편 죽음 뒤 깨달은 ‘삶과 죽음’ 꾹꾹 눌러 담아
최문자 시인이 21일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들고 있다. 그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집 뒤 칠보산으로 간다. 매일 한 시간 이상 풀과 꽃 범벅인 길을 걷는다. 치매가 오면 맨 먼저 산책하다 길을 잃을 것 같다”며 웃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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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바라보는 최문자 시인(79)은 4일 출간한 자신의 아홉 번째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민음사)를 마지막 작품으로 여겼다. ‘다음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펜을 잡았다. 죽음과 가까이에서 쓴 글은 마치 유언장과도 같았다. 불시에 죽음을 맞이해도 남겨진 세 딸들이 시집을 통해 그가 삶의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는 이번 시집에 삶과 죽음, 청춘과 늙어감, 사랑과 후회에 대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리토르넬로는 후렴구를 의미한다. 서울 동작구 카페에서 21일 만난 최 시인은 “후렴구는 계속 돌아오지만 연주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인간도 반복되는 순간들을 조금씩 다르게 걸어가려 한다. 20대의 나와 70대의 내가 달랐단 것처럼 말이다”라고 했다. ‘해바라기밭…’은 2019년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 이후 3년 만에 낸 신작이다.
산문집도 냈다. ‘생에 단 한 번’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시인이 산문을 쓰는 건 ‘외도같이 느껴져’ 고집스럽게 시만 썼던 그는 14일 출간한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난다)를 통해 유년 시절, 고통스러웠던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그는 “바람처럼 쓰러지는 죽음도 있다. 나도 그렇게 죽을지 모른다. 어떤 조짐 같은 걸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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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그의 시집과 산문집에 담겼다. ‘이런 흰 꽃이 죽어라고 피면 죽음도 그칠 줄 알았나? … 꽃꿈은/설렘이 아니고 새파란 공포인 거야.’(시 ‘수선화 감정’ 중)
죽음을 목전에 뒀던 그가 깨달은 건 ‘아낌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다. 사물이나 일, 이상향, 또는 신을 향한 사랑이 될 수도 있다. ‘한창 뜨거울 때, 한창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울 때 이 뜨거움과 부드러움의 힘으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힘껏 돕고 힘껏 녹여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중)
“산문집 제목처럼 우린 늘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다 세워놓고 끝을 맺어요. 깊이 사랑할수록 더 깊이 두려워하는 게 인간 본성인가 봐요. 이별과 맞닥뜨렸을 때 안타깝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내 안에 다 받아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라도 아쉬움은 없다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만약’이라고 운을 뗐다. “만약 또 한 번의 시집을 낸다면, 아주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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