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산불 발생 다음날인 이달 5일 산불 최초 발화지인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를 찾았다. 도로변 야산 한쪽에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고, 빨간색과 노란색 깃발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최초 발화지 확정까지 걸린 4일
“빨간색 깃발은 불이 앞으로, 노란색은 불이 옆으로 흘러갔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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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화지는 산불이 지나간 현장에서 불길의 방향을 추적해 찾는다. 권 박사는 울진·삼척 산불 발생 당일 오후 두천리에서 먼저 낙엽이 전부 타버린 곳부터 찾았다. 불길이 지나간 곳에는 낙엽이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 산 아래위로 나 있는 불길의 흔적 속에서 돌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료수 캔, 나무 등의 그을음을 살피며 불길의 방향을 분석했다. 불에 타지 않는 돌과 음료수 캔은 그을음이 진 곳이 불길이 흘러간 방향이고, 불에 타는 나무는 그을음이 진 반대편이 불길이 흘러간 방향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권 박사는 말했다.
이렇게 불길의 방향을 역으로 추적하면 최초 발화지가 나온다. 산불은 바람에 따라 일정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최초 발화지의 경우 불이 여러 방향으로 흘러간 흔적을 남긴다. 이런 특징을 통해 권 박사는 현장에서 불의 방향이 앞, 뒤, 옆으로 혼재돼있는 가로 4m 세로 1m 가량 넓이의 최초 발화지를 확인했다.
●카메라에 잡힌 4대의 차량
이달 16일 울진군청과 산림청, 경북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는 최초 발화지에서 합동 감식을 벌였다. 현장에서 불에 탄 흔적이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물통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햇볕이 물통을 통과하면서 응집돼 불을 냈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그러나 산림당국 관계자는 “겨울철이라 햇빛이 약한데다 그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이 날 정도로 열이 축적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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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운전자들은 모두 “지나가기만 했을 뿐 담배꽁초 등을 버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차주들은 영상 기록이 지워졌거나, 메모리카드를 빼놓은 상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불 원인의 증거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은 모두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다. 조사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까지 산불 원인으로 추정되는 담배꽁초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진군청 관계자는 “담배꽁초라도 있어야 DNA 등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울진군청은 차량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지속할 예정이다.
●빠른 조사, 현장 보존이 산불 원인 규명의 핵심
원칙적으로 산불 원인 조사는 산불 진화가 완료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화를 최우선에 두는 까닭이다. 산불이 진화된 지 사흘이 흐른 뒤에야 최초 발화지에서 첫 현장 합동 감식이 이뤄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수 인원이라도 최대한 빨리 원인 조사에 투입하는 게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거라 강조한다. 권 박사는 “진화 작업과 동시에 원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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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남건우 기자 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