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잃은 산불 피해 주민들 “어디 가서 뭘 할지 살길 막막” “새 집 지어준 자식들에게 미안” 급히 피하느라 옷가지 하나 못챙겨 70대 “농기계 다 타버려 농사 포기”…불탄 고향집 찾은 자녀 “마음 아파” 울진 등 이재민 6497명, 391곳 소실
이재민 대피소 경북 울진군에서 산불이 발생한 지 이틀째인 5일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지친 표정으로 진화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임시 대피소에는 5개 마을 주민 400여 명이 모여 있다. 울진=뉴스1
경북 울진군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5일 만난 장인열 씨(73)는 긴 한숨부터 쉬었다. 장 씨의 집은 산불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 중 하나인 울진군 북면 소곡1리에 있다. 산불로 이 마을에서만 전소된 주택은 41채다. 장 씨의 집은 간신히 화마를 피했지만 창고가 모두 불에 탔다. 장 씨는 “값비싼 농기구가 창고에 있었는데 싹 다 타버렸다. 올해 농사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울진·삼척 화재 때문에 대피한 주민은 6497명에 달한다. 주택 창고 등 시설 391곳이 소실됐다.
○ “자식들 돈으로 집 고쳤는데…”
4일 오전 11시 16분 울진군 북면 두천리 마을에서 신고 접수된 불은 남서풍을 타고 2∼3시간 만에 인근 마을 전체를 삼켰다. 두천리 북쪽으로 8km가량 사이에 있는 소곡1리, 신화2리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할머니는 “2년 전 자식들의 도움으로 집을 새로 지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버렸다”며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했다. 급하게 대피하느라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할머니는 외투도 걸치지 못한 채 긴팔 티에 얇은 조끼만 입은 차림이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던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순남 할머니(81)는 4일 오전 사전투표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피소로 발길을 돌렸다. 할머니는 “대피소에 있다가 지난해 자식들 도움으로 새로 고친 집이 다 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 “6남매 살던 집인데”… 화마가 삼킨 고향집
화마가 쓸고 간 마을 6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에서 남봉학 씨(85·여)가 울진·삼척 산불로 전소된 집을 등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울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5일 오후 북면 신화2리 어머니 집 앞에 서 있던 전모 씨(52·울산)는 “연락을 받고 대피소에 계신 어머니를 대신해 집에 왔다”고 했다. 집은 폭삭 무너져 내렸고 검은 잔해만 남아 있었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집으로 발길을 옮기던 전 씨는 “이거 참…”이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전 씨는 언론에 보도된 산불 피해 사진을 보던 동생이 ‘여기 우리 집 같다’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설마’라고 여겼다. 전 씨는 “여섯 남매가 이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고 말한 뒤 휴대전화를 꺼내 불에 탄 집 구석구석을 찍었다. 기자에게 “가족 형제들에게 굳이 불에 타 쓰러진 집 사진을 보낼 생각은 없다. 마음만 더 아프지 않겠느냐”며 한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집 주변을 서성였다.
울진군 관계자는 “진화 작업이 끝나는 대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진=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울진=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