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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같은 악몽 겁은 나지만”…우크라인들, 러 침공시 ‘결사항전’

입력 | 2022-01-25 13:01:00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사는 컴퓨터 전문가 다닐로 코브준은 자식들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쳐왔다. 제과점 주인 로만 나보즈니악은 동료들에게 상점 운영을 마스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술집 주인 비탈리예 키리첸코는 항상 휘발유통을 가득 채워 두고 있다. 필요할 때 얼른 들고 나가 싸우기 위해서다.

1991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2014년부터 전쟁에 시달리면서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가까이 10만명의 군대를 배치한 채 1940년 이래 유럽 최대 지상전을 위협하면서 사람들은 이번에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키예프 현지 르포기사를 통해 전했다.

46세의 코브준은 “‘또?’라고 묻는 것이 정상처럼 됐다지만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시리아 같은 악몽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라고 말했다.

코브준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동부 반군을 지원할 당시 헐벗었던 우크라이나 군대에 옷과 식품, 장비를 지원했다. 그는 모두가 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경험이 많다”고 강조했다.

8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사람들은 일상을 꾸려왔다. 전쟁은 동부지역에서만 벌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지원하는 반군과 저격과 포격을 주고받으며 고착된 전선을 지키고 있다. 1만4000명이 숨졌지만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삶을 이어가도록 권하고 있다. 대규모 침공 위협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웃국가에서 나도는 소문일 뿐”이라고 방송연설에서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시대 대량 아사와 2차 세계대전의 탱크 전투,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등 수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1991년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이래 우크라이나는 자립을 위해 분투해왔다.

러시아는 서방을 본받아 만연한 부패를 청산하고 가난을 극복하려는 우크라이나를 위협하지만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막 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싸울 생각이다.

코브준은 “이땅에는 수백만명이 묻혔다. 백년마다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다. 우리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정복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사람들에게 차분히 일상생활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포분위기를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당국자들은 미국이 러시아가 곧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해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불평한다.

우크라이나의 유력 인사들이 페이스북에서 #우린준비가돼있다는 해시태그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폭격이나 화재와 같은 비상시에 아동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와 전쟁에 대해 겁먹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이 효과를 내고 있다. 예금인출 사태는 전혀 조짐이 없다.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브냐의 가치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예전 만큼은 아니다.

지난 17일 톱 뉴스는 30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고대해온 유럽연합(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어렵게 하는 국내 정치 갈등이었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그에 대한 반역 혐의 재판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미 상원의원들이 머물고 있는 하이야트 리전시 호텔 인근 광장에서 하루종일 시위가 벌어졌고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포로셴코가 수사중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오자 시위가 멈췄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힙한 카페와 아르누보스타일 아파트 건물, 구소련 스타일 식료품시장이 있는 키예프 포딜 구역 주민들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엔 나이 많은 여성이 퍼그 애완견과 맟춘 코트와 장화를 신고 눈길을 걸었고 광장의 아이스링크에선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데운 포도주를 마셨다.

이곳저곳에서 전쟁 얘기가 들렸다. 고급호텔에선 미국인 투숙객이 러시아가 침공해도 숙박료를 내야하느냐고 물었다.

수백년이 넘은 치트니예 시장에선 상인들이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손님들은 예전엔 트브록 치즈를 1kg씩 샀지만 지금은 200~300g만 사고 있다고 검은 털모자를 쓴 69살의 여성 상인이 말했다. 발렌티나 미하일리브나라는 이 여성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부인 스비틀라나와 함께 과일과 야채를 파는 60세의 이호르 오스타펜코는 체념한 듯 자신들은 달리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 관리, 백만장자들은 가겠지만 우리야 무슨 수로 가겠소. 돈이 없는데.”

키리첸코가 주인인 핑크 플로이드라는 술집의 지배인은 손님이 몇 주전 러시아 군대가 와 있다고 말하기 전까진 아무 것도 몰랐다고 했다.

30살인 보단 체코르카 지배인은 커피나 칵테일을 마시는 손님들이 전쟁을 걱정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면서 말이다.

머리를 짧게 깍은 36살의 카페 주인 키리첸코는 지난 연말 손님들과 전기와 전화가 끊어지는 등 비상상황을 두고 대화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가족과 함게 생필품을 담은 가방을 챙겨서 NATO회원국인 폴란드와 슬로바키아가 가까운 서쪽으로 가 유사시 넘어갈 거라고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술집에 돈을 쓰고 있고 다가오는 여름 축제에도 대비하고 있다. 노점 카페 트럭을 만들어 전국을 돌 생각도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위기를 겪은 일이 많다면서 2004년의 혁명, 2000년대의 경제난, 2014년의 새로운 혁명과 전쟁 등을 꼽았다.

“그렇다고 항상 겁에 질려 살 순 없지 않느냐.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낯이 두꺼워져 신경도 안쓴다”고 했다.

제과점 주인 나보즈니악은 스포츠형 수염에 코에 피어싱을 한 모습이다. 2016년 제대한 뒤 사람들이 심드렁한 모습에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고 했다. 당시 “내 기분은 사람들에게 ‘여봐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31살인 나보즈니악은 군인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지켜주고 사람들은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님을 지키기 위해 군에 지원했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지하실에서 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주 그는 종업원들에게 자신이 다시 전쟁터에 나갈 때를 대비해 자기 상점 베테라노 브라우니(Veterano Broenie)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지를 가르쳤다. 건물주에게 유사시 카페을 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가능한 대로 월세와 직원 봉급을 줄 예정이지만 말이다. 그는 “공부하고 일하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심지어 데이트도 한다. 푸틴이 있건 말건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컴퓨터 전문가 코브준은 광장 한쪽 어둑한 바르바칸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전쟁이 나면 라트비아 동업자와 함께 컴퓨터 기술을 살려서 우크라이나 군대가 쓸 무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러시아가 공습과 탱크로 전쟁을 일으킬 순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부를 점령하진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점령한 2014년까지 우호적으로 대했음을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제국의 영토로 삼아 통치해온 러시아에 대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국가적 자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거의 모든 레닌 동상을 무너트렸다. 사람들은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를 쓰기 시작했고 지난 연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1일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무기를 들 것이라고 답했다.

민족주의자들이 전쟁 기간중 힘을 합쳐 러시아가 침공하자마자 맞서 싸울 것이며 돈과 물자가 있는 지식인들은 홍보전을 펼치면서 군대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회전포탑이 달린 정찰용 드론까지 말이다.

이들 모두 언제든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코브준은 강조했다. 그는 최근 10살과 14살 자식들에게 권총과 카빈 소총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쏘는 방법을 가르쳤다. “맥주나 만들어 해변가에 집을 사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걸 바랄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