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 백과사전 600여쪽 모든문항 색칠 81개 서체로 ‘너’ 한글자 종이에 새겨 대상 체화하며 하찮은 것 가치 담아
81개의 서체를 활용해 ‘너’라는 한 글자를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2021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여러 면모를 바라보며 “너는 누구냐”고 묻는 것 같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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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1년간 640쪽의 사전을 칠해 만든 ‘쓸모없는 사전’(2020년). 김종영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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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2021년)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 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 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 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