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에 피로감 더해져 눈앞의 대상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불멍’ ‘물멍’… 힐링 방법 인기몰이 실제로 마음 가라앉혀 명상효과 심장박동수 안정되고 뇌에 휴식
통영 연화도 고재열 여행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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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와 불편한 정치·사회 뉴스,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까지. 보고 듣는 것들이 피곤하다. 여기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까지 피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퇴근 후 어항 속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는 ‘물멍’, 향초를 피우고 불꽃을 가만히 보는 ‘불멍’을 한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소위 ‘멍 때리기’로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정지화면 같은 고요함… 딱 10분 멍 때리는 방송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 물을 바라보는 물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요즘 같은 때엔 폭신한 흙 길을 걸으며 적당한 햇살을 품은 바람에 몸을 맡겨보는 ‘바람멍’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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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도 일상 소음을 담아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을 업로드한다. 머리 감기,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영상들은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생각도 할 필요 없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 밋밋할 정도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다.
뇌도 휴식 필요… 잠깐 멈춤으로 명상 효과
30∼50대의 바쁜 현대인을 위한 여행을 기획하는 고재열 여행감독은 이런 현상을 “피로사회, 강박사회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 여행감독은 “목적 없음을 목적으로 하는 멍 때리기는 일종의 말줄임표”라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말줄임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멍 때리기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멍 때리기로 심장 박동 수가 안정되고 뇌에도 휴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하루 15분 정도 뇌를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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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잠깐의 휴식이 기억력, 학습력,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유명인과 비유명인의 얼굴 사진을 차례대로 보여준 후 이전에 본 사진의 인물과 같은지 맞히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참가자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맞혔다.
하지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한다고 직면한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만큼 이를 도피처로 삼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또 멍 때리기를 너무 자주 하면 오히려 뇌세포 노화가 촉진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뇌는 하루에 1∼2번, 한 번에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이 가을, ‘멍 때리기’ 딱 좋은 곳
고재열 여행감독 추천 명소안면도 백리포 불멍. 양현모씨 제공
‘섬멍’ 하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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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단절감과 고립감을 두루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바다 맛과 하늘 맛까지 두루 누릴 수 있어서 좋다.
신안의 섬들은 아득하다.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 신안의 섬에 비해 통영의 섬들은 오똑하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군산의 섬은 석양에 멍 때리기 좋다. 마음을 황홀하게 해준다.
‘숲멍’ 하기 좋은 곳
제주의 숲이 숲멍을 하기에 가장 좋다. 다양한 숲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머체왓숲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멍 때리기에 좋다. 숲 중간에 데크 시설이 돼 있어서 편안하게 멍을 즐길 수 있다. 용눈이오름은 숲 아닌 숲이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은 오름을 오르면 바람이 볼을 두들겨줘 조용히 멍을 즐길 수 있다. 불의 숲도 있다. 제주 세계유산축제에 맞춰 개방하는데 숲을 가로지르는 용암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다. U자형 협곡이 주는 고립감이 아늑하다.
‘불멍’ 하기 좋은 곳
캠핑의 화롯불은 우리 DNA 안에 있는 원시인의 안식을 일깨워준다. 불멍에서는 특히 나눠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먹을 것을 나눠야 한다. 따뜻함과 배부름을 나누는 사이는 좋은 사이다. 고민을 나눠야 한다.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곁을 열어주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적을 나눠야 한다. 불멍을 할 때는 이야기가 편한 사람보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이 제일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