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청약 탈락에 경매 관심, “공부해서라도 싸게 집 사겠다” 퇴근뒤엔 경매학원으로 몰려가… 아파트 낙찰가율 역대최고 수준 물량 줄면서 시세 넘는 낙찰도… 전문가 “채무-권리관계 잘 따져야”
《일반 매매나 청약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고 본 20, 30대 젊은층이 아파트 경매에 대거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무주택 신혼부부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경매학원에서 ‘열공’하고, 주중에는 경매법정에서 입찰가격을 두고 첩보전을 방불케 할 만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매 열풍의 기저에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언젠가는 자신도 ‘착한 가격’에 좋은 매물을 낙찰받으리라는 MZ세대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낙찰가 수준이 역대 최고에 이른 서울 아파트 경매 현장을 찾았다.》
8일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 211호. 8명의 응찰자가 몰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파트(전용면적 74m²) 낙찰자가 발표되자 법정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낙찰자 임모 씨(35)는 결혼 2년차 신혼이었다. 그가 써낸 입찰가는 감정가보다 1억1000만 원가량 높은 5억3389만 원이었다. 최근 거래 가격(6억 원)보다 싸게 직접 입주할 집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그는 “전셋값은 오르는데 청약 가점은 너무 낮아 경매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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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에 좌절한 무주택자들 경매로 발길
내 집 마련의 꿈 안고… 주택시장에 매물이 급감하면서 경매로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경매학원에는 입찰 방법을 공부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적지 않았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날 경매법정에서 만난 예비 신랑 이모 씨(35)는 경매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집값이 너무 올라 경매로 집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번에는 연습 삼아 입찰에 참여했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스스로 공부해서 경매 아파트를 잡으려는 실수요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 금요일인 10일 저녁 서울 강남구 H경매학원에는 거리 두기로 비워둔 좌석을 빼면 빈자리가 드물었다. 신혼인 김모 씨(30·여)는 주 3회 퇴근 후 곧장 학원으로 와 오후 10시까지 경매 강의를 듣고 있다. 서울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김 씨는 청약을 꾸준히 넣었지만 모두 탈락했다. 그는 “청약 당첨만 마냥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며 “경매도 물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매물을 잡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받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달 1일 경매에 나온 서울 강서구 ‘가양6단지 아파트’(전용 40m²)는 7명이 경쟁한 끝에 8억1185만 원에 낙찰됐다. 감정가(6억1800만 원)는 물론이고 7월 말의 실거래가(7억4000만 원)보다 약 8000만 원 높은 값이다. 일반 매물이 부족해지면서 생긴 이상 현상이다. 실제 가양6단지는 1476채 규모 대단지지만 시장에 나온 매물은 8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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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난 심해지며 경매물건도 감소
전문가들은 채무 관계가 복잡한 경매 자체의 위험 부담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급등한 시세보다 싸다는 점만 봐서는 장기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수 있는 물건을 비싸게 사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경매 열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신규 택지나 도심 공공개발로 공급하겠다는 아파트의 분양과 입주는 수년 뒤에나 가능해 무주택자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매 전문 변호사인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 변호사는 “‘부동산을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은 커졌는데 매물은 없다 보니 20, 30대 무주택자들이 경매 시장으로 넘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