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국’ 한국 태권도를 대표해 ‘나 홀로’ 나선 첫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무대. 부담감이 컸다. 첫 경기를 패한 뒤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모두가 고개를 젓던 패자부활전에서 ‘내 발을 믿자’,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결국 꿈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럴림픽 메달은 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긴 하루를 빛나는 동메달로 마무리한 태권 청년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우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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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훈은 1회전부터 작정한 듯 강공으로 나섰다. 3연속 몸통차기에 성공하며 6-0으로 앞서나갔다. 패자 4강 승리 뒤 “내 오른다리는 지금 내 다리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발차기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음 급한 상대가 머리 부분을 가격하는 플레이로 감점을 받으면서 주정훈은 8-2로 앞선 채 1회전을 마쳤다. 패럴림픽에서는 머리 부분 공격이 금지다.
2회전 초반 한차례 공격을 주고 받은 뒤 탐색전이 이어졌다. 10-6에서 주정훈의 몸통차기가 두 차례 작렬했다. 14-7로 앞선 채 맞이한 3회전. 이살디비로프가 몸통차기로 따라붙었지만 45초를 남기고 주정훈이 3연속 발차기에 성공하면서 24-14 승리를 거뒀다.
주정훈은 이날 출전한 네 경기 중 세 경기에서 30점 이상을 올렸다. 상대 몸통을 노리는 발차기 기술를 앞세운 ‘닥공’(닥치고 공격) 모드로 패럴림픽 첫 메달 역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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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태권도 선수로도 전국 대회에서 8강, 4강에 오르며 기대를 모으던 주정훈은 사춘기 시절 경기장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상처를 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접었다. 다시 태권도를 꿈꾸게 된 건 태권도가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된 다음이었다. 2017년 12월 도복을 다시 입었고 올해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아시아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면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주정훈은 “이제 상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 태권도로 돌아오길 잘했다”면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세계에서 3등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도 아들 자랑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함께 메달을 들고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갈 것이다. 할머니가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도, 손자가 할머니 집에서 다치긴 했지만 할머니 덕에 이 대회에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 “할머니가 제가 자라면서 본인 탓을 많이 하셨다. 우리 손자 너무 잘 컸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고 자책하셨다.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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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황규인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