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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탈출 한국대사 “공항에 헬기 뜨고 총소리… 전쟁 같았다”

입력 | 2021-08-19 03:00:00

최태호 대사가 전한 탈출 상황




“계속 총소리가 들리고 우방국 헬기가 (카불) 공항을 맴돌았다. 영화에서 보던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출해 카타르 수도 도하에 머물고 있는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가 18일 처음으로 직접 대사관 철수 당시 상황을 전했다(사진). 이날 검은색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화상 브리핑에 참석한 최 대사는 탈출 전 가로세로 30cm의 작은 짐밖에 챙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해 양복을 챙겨오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됐던 15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반. 주아프간 대사관 경비업체가 “탈레반이 대사관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곳까지 진입했다”고 최 대사에게 알렸다. 최 대사는 당시 “탈레반이 카불 시내까지 왔지만 정부군이 반격 방어 작전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30여 분 뒤 아프간 내무부가 “탈레반이 카불 사방에서 진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외교부 본부와 화상 회의를 진행하던 중 최 대사는 우방국으로부터 “모두 철수 작전에 돌입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당장 철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문서 파기 등 매뉴얼에 따라 급박하게 움직였다.

문제는 공항까지 가는 길이었다. 탈레반이 카불 시내를 장악한 상황에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대사관은 이런 상황을 우려해 유사시에 미군 군용기 등으로 철수할 수 있도록 미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였다. 대사관 공관원들은 미 대사관까지 5분을 차로 달렸다. 미 대사관에 도착해 곧바로 헬기를 타고 카불 군용공항으로 향했다. 아프간인들이 탈출을 위해 민간공항 활주로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공관원들은 이날 한 차례 공습경보로 비행기가 지연된 끝에 현지 시간 오후 7시경에야 이륙할 수 있었다.

아프간에 남은 마지막 교민 1명이 이날 대사관 직원들의 설득에도 탈출을 결정하지 못하자 최 대사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남기로 했다. 최 대사는 “직원들은 일단 철수하고 저를 비롯한 3명이 남아 교민을 계속 설득해 보겠다고 외교부 본부에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6일 최 대사와 공관원들은 설득에 성공했고 함께 군 수송기에 올랐다. “대형 수송기 안에 탑승자들 모두 다 바닥에 앉았다. 마치 옛날 배를 타듯 오밀조밀 모여 앉아야 했다.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인이었다”고 전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